수맥은 흐르고 =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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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맥은 흐르고
=강혜정
그 골목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면 대문이 반쯤 열려 있다. 땡고추에 잔멸치나 볶을 거라는 여인은 밤이면 허리에 작살이 꽂힌다는 푸념을 햇살에 말린다 낮은 담을 넘은 하소연은 낡은 홀아비 등허리를 기어다니고 얼마 남지 않은 가을에 담쟁이 애간장이 붉게 타오른다
언제부터 흐르고 있었을까, 방바닥에 귀를 대고 배꼽 속으로 몸을 말아본다. 봄이 꼿꼿하게 허리 세우며 꽃을 뿌리던 어느 날도 흐르고 아득한 바다에서 엄지를 빨고 있는 희미한 형상이 스쳐 간다 흰머리 나면서 배웅하는 일이 자주 돋고 오늘만 되풀이하는 달력은 말이 없다.
나를 잊지 말라던 시인은 기어코 묻혀 숨은 물로 흐르다 헐렁한 이야기는 혼령으로 세상을 떠돌고 오늘 골목을 살다 간 줄거리는 땅 밑으로 스며들어 좁은 지층을 떠다니며 느린 봄을 잉태한다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이름을 손톱으로 긁어 본다
물 흐르는 곳에 이야기가 흐른다 모퉁이에는 물여울이 가끔 생기고
얼띤 드립 한 잔
시제 ‘수맥은 흐르고’에서 수맥은 시맥이다. 그리움의 한 줄기 긴 여행과도 같다. 그 골목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면 대문이 반쯤 열려 있다. 시 객체에 대한 묘사다. 소싯적 기억 속에 젖어 드는 백지장을 본다. 땡고추에 잔 멸치나 볶을 거라는 여인은 밤이면 허리에 작살이 꽂힌다는 푸념을 햇살에 말린다. 물론 겉은 어머님에 대한 묘사지만 속은 글에 대한 완벽한 논리를 되짚는다. 고추는 고추考推로 비교해서 생각하는 것으로 사실에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하는 일이며 멸치는 멸할 멸滅에 부끄러울 치恥에 가까울 정도로 옥에 티를 가리는 것이겠다. 여인은 자를 상징하며 밤이면 검정의 은유로 허리에 작살이 꽂힌다는 푸념, 뾰족한 펜 날을 떠올리게 한다. 낮은 담을 넘은 하소연은 홀아비 등허리를 기어 다니고 얼마 남지 않은 가을에 담쟁이 애간장이 붉게 타오른다. 물론 부부의 연을 다루었지만, 지면과 지구와의 연도 연이라 시에 대한 안착과 교정 그리고 애끓는 이별을 고대하는 장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흐르고 있었을까? 보는 즉시 흐르고 방바닥에 귀를 대고 배꼽 속으로 몸을 말아본다. 소통과 전달, 소통과 문화, 소통과 안전, 소통과 토론, 소통과 공감대를 찾는 장으로 시에 열중한다. 봄이 꼿꼿하게 허리 세우며 꽃을 뿌리던 어느 날도 흐르고 아득한 바다에서 엄지를 빨고 있는 희미한 형상이 스쳐 간다. 봄은 열려 있는 상황적 시어로 시 객체다. 꼿꼿하게 허리 세우는 일, 소통에 고정 불변적이며 아직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엄지는 엄지嚴旨로 엄중한 교지로 본다. 흰 머리 나면서 배웅하는 일이 자주 돋고 오늘만 되풀이하는 달력은 말이 없다. 흰 머리는 백지를 은유하고 배웅한다는 말, 자주 들여다보는 일이며 되풀이하고 달력은 달의 힘이다. 즉 시에 이끌리는 마력이겠다. 나를 잊지 말라던 시인은 기어코 묻혀 숨은 물로 흐르다 헐렁한 이야기는 혼령으로 세상을 떠돌고 오늘 골목을 살다 간 줄거리는 땅 밑으로 스며들어 좁은 지층을 떠다니며 느린 봄을 잉태한다. 이 장면도 시에 안착한 지면과 시를 읽는 지구와의 관계를 묘사한다. 물로 흐른다는 것은 이미 구체가 되었다는 것과 같고 땅 밑으로 스며들어 좁은 지층을 떠다니는 것은 지면에 안착하기 위한 수작이겠다.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이름을 손톱으로 긁어 본다. 손톱은 갑甲으로 거북이 등딱지처럼 겉을 상징한다. 손톱으로 긁었다는 건 이미 긁혀 상처가 깊게 난 것으로 움푹 팬 마음을 묘사했다. 물 흐르는 곳에 이야기 흐른다. 모퉁이에는 물여울이 가끔 생겼다. 모통이, 모서리 모두 시 객체를 지목하는 시어로 구체와는 역이다. 물여울처럼 시의 어떤 맥이 흘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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