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방문 =장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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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방문
=장수진
오후, 산 너머의 태양은 어느 더운 나라의 이름 모를 여성이 짠 조각보처럼, 보기에 따라 간절하고, 아름답고 슬프다. 빛은 켠희를 포함한다. 물이 틀어진 싱크대까지도.
켠희의 발목이 팬다. 빛과 물속에서. 켠희는 휘어진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거실엔 켠희뿐이다. 먼 나라의 여인은 쉬지 않고 조각보를 만들고, 태양은 모든 우발적인 순간들을 환희 비춘다. 점점 물컹거리는 켠희의 다리. 고관절, 배, 견갑, 뒤통수, 켠희의 가느다란 몸은 썩은 물이 되어 거실 바닥에 졸졸 흐른다.
켠희는 이곳에서 오래전 사랑하던 소년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오후의 빛이 거실을 비추고, 자신은 선인장을 돌보고 있다고 느끼던 창가에서.
문학과 지성 시인선 장수진 시집 순진한 삶 34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 ‘빛의 방문’은 자아의 내면을 성찰하고 붓끝으로 구현할 가치를 싣는다. 산과 태양은 대조를 이룬다. 산은 넘어야 할 존재며 씻어야 할 대상이다. 그렇지만 태양은 유일무이한 존재며 내리쬐는 빛처럼 뇌리에 스치는 기억으로 조각보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기억의 일면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이러한 것을 씻는 곳은 싱크대다. 싱크대는 하나의 시적 장치로 세면洗面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자아의 기분을 쇄신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태양은 다른 어떤 나라의 이름보다도 귀하고 간절하고 때론 아름답다가도 슬픈 현실을 맞는다. 나라, 벌이거나 펼칠 나羅 혹은 발가벗긴 것으로 나裸 붙잡거나 비비거나 뒤섞을 나拏까지 그 거리감이다. 일명 켠희라 해둔다. 이 또한, 시적 자아의 대용이다. 켠이라는 말, 등잔이나 양초 따위의 불을 붙이는 행위나 서로 갈라지거나 맞서는 편까지 두루 사용한다. 희는 빛나거나熙, 기쁘거나喜, 즐길嬉, 바라거나希, 복을 다루는禧, 희생이거나犧, 놀거나戱, 자국 자취를 뜻하는姬까지 담아본다. 켠희는 먼 나라의 여인이다. 진정한 자아를 떠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기억의 한 자락을 떠올릴수록 우발적인 순간만 착시 되고 고인 물처럼 구석에서 썩어들어가는 것을 확인한다. 다리, 고관절, 배, 견갑, 뒤통수 어디 한 군데 성한 데가 없다. 모두 뻐근하다. 모든 사건의 실마리는 거실 바닥이라는 것도 확인한다. 켠희는 이곳에서 오래전 사랑하던 소년과 긴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켠희와 소년은 모두 자를 상징한다. 오후는 진정한 나 이후의 시간을 선인장은 먼저 온 글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깨어있는 영혼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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