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거미줄처럼 걸려 있는 집의 기호에 대해서 =조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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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거미줄처럼 걸려 있는 집의 기호에 대해서
=조말선
건축가가 되자 그녀는 우선 집에 갇힌 그녀부터 구하기로 했다 현관을 부수었다 문을 두드리던 손님들이 양떼처럼 쏟아졌다 창문을 깨버렸다 과묵한 가구들이 쨍그랑쨍그랑 재잘거렸다 지붕 위에서는 한 장 한 장 기왓장이 내던져졌다 아직도 그녀가 집에 갇혀 있잖아! 언제나 친절하던 벽이 그녀를 떠받쳐주었다 벽에 기대어 그녀는 곰곰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 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단단한 벽으로 된 실내에서 생각이 꼼짝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녀는 생각을 허물까 벽을 허물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나치게 친절한 벽을 오래오래 업어주고 싶었다 창조적인 생각으로 팔딱거리는 그녀의 유방이 점점 크게 확장되고 있었다 생각이 흰젖처럼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벽으로 된 집을 허공에 걸었다 기호만 남은 벽이 허공으로 실내장식을 했다 드디어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건축가였다
창비시선 267 조말선 시집 둥근발작 39p
얼띤 드립 한 잔
재밌다. 기호? 어떠한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쓰이는 부호, 문자, 표지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한자로 변용하면 기호記號다. 물론 시니까 즐기고 좋아하는 것 기호嗜好도 된다. 세상 모든 글쟁이는 건축가나 다름없다. 상상과 기억, 상상과 개성, 상상과 현실, 상상과 자료에 의한 토대를 마련하고 집을 짓는다. 우선 시인의 시에 따라 집에 갇힌 그녀부터 구하기로 한다. 그렇게 해야 새로운 그녀를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러면 집에 갇힌 그녀는 어떤 상태일까? 죽음의 상태, 굳은 시체나 다름이 없겠다. 우리는 그 시체를 뜯고 헤쳐보며 분석하는 일로 시작은 이루어진다. 그 과정을 천천히 서술한다. 그러므로 현관을 부수고 문을 두드리고 손님은 양 떼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창문은 깨지기도 한다. 과묵한 가구들이 쨍그랑쨍그랑 재잘거린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것은 안에서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본 느낌이며 바깥에서 나름 작업하는 일련의 과정을 역으로 묘사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지붕 위에서는 한 장 한 장 기왓장이 내던져졌다. 지붕과 기왓장은 전에도 한 번 쓴 것 같다. 종이의 상태를 제유한 지붕과 일어나거나 누운 상태에서 느낀 어감은 분명히 기왓장이다. 물론 한자음을 빌려 해석한 것이지만 우리말 대다수는 한자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해서 특히 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그녀가 집에 갇혔다. 여전히 일어나지 못한 그녀는 자의 상징이다. 언제나 친절하던 벽이 그녀를 떠받쳐주었다. 벽은 시 객체다. 벽이 읽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다. 그녀를 떠받쳐주고 있으니까! 벽에 기대어 그녀는 곰곰 생각에 잠길 수 있다는 말, 벽은 그녀를 읽으며 곰곰 생각에 잠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생각과 생각이 벽에 가로 놓여 있는 것이다. 단단한 벽으로 된 실내에서 생각이 꼼짝을 못 하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이다. 아직도 그녀를 읽지는 못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생각을 허물까 벽을 허물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나치게 친절한 벽을 오래오래 업어주고 싶었다. 왜냐고? 이렇게 가까이 머물며 나를 읽고 있으니까! 누가 다독이며 두드리며 만지면서 느낌까지 주고받겠느냐 말이다. 그러면 그녀는 창조적인 생각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팔딱거린다. 무엇이? 나의 심장이 뭔가 쓰고 싶은 심정, 굵고 긴 펜을 아름답게 펼치고 싶다. 그녀는 더욱 유방이 팽창하고 확장한다. 유방이라는 말, 흐를 유와 모서리 방이겠다. 그녀의 유방이니까? 소유격이다. 유방이 어느 쪽을 지칭하는지는 분명히 나와 있다. 흰 젖은 백을 상징하며 줄줄 새 나오는 일, 허공은 시 주체와 객체 사이의 공간을 기호는 아까 얘기했고 실내장식은 무엇을 이루었는지는 알 필요가 없고 그녀가 가장 매혹적인 건축가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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