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 =박라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서열
=박라연
아무리 넓고 넓은 우주라도 더 간절한 쪽부터
마음을 배달해주시려는
참 눈치 빠르신 우체부 아저씨, 만난 적 있습니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 박라연 시집 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 105p
얼띤 드립 한 잔
어머니는 뜨물을 걸러 냄비에다가 담으시고는
소뼈를 넣고 오랫동안 고아 내셨다
생강, 마늘, 대파와 갖은양념이 들어가고
된장과 우거지까지 뜨끈뜨끈한 그 한 숟가락은
참으로 진품 명품이 아닐 수 없었다.
시제 ‘서열’은 차례나 순서를 얘기하는 서열序列로 보이지는 않는다. 서쪽의 기쁨, 그 기쁨에 따라 움직이거나 따르는 아이와 같다. 우주는 집을 상징한다. 마음을 배달해주시려는, 공손한 표현으로 누군가가 나를 열어본다는 것은 그만큼 기쁨이다. 그 누군가가 우체부 아저씨, 그러니까 우체부도 우체부가 아니고 오른쪽을 상징한 우 즉 삶을 대변하는 쪽을 가리키며 몸을 뜻하는 體에 붙거나 기대거나 의지하는 부附다. 만난 적 있다. 지금처럼,
위 시를 읽고 한 편 간단하게 지어본다. 나의 어머니는 평생 고기를 드시지 않으셨다. 육류는 절대였다. 그러니 집에서 어머니가 하신 고기반찬은 먹은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여기는 시를 다루는 곳이니까 써 본다. 어머니는 나를 들여다보는 시 객체로 설정하고 소뼈는 안쪽을 우거지는 오른쪽을 대변한다. 뜨물과 냄비, 생강과 마늘 대파 그리고 된장까지 풀어서 넣은 시 뜨끈뜨끈한 우거지탕에다가 소주 한 잔이면 남 부러울 게 없다.
냄비의 표준어는 ‘남비’라고 한다. 냄비는 일본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비가 표준어가 아니라 냄비가 표준어라니 어가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양상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