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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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이현승
실패란 얼마나 안온한 집인가.
결과의 자리에서 보면 모든 일이 자명하다.
‘임자 나 왔어’는 전과 14범이 한 말이었다.
교도소로 되돌아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죄짓지 않고 사는 것은 가능한가.
도망치는 삶은 가만히 있어도 목이 마르다.
개과천선과 종신회개로 거듭나지만
그러나 올 것은 오고야 만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침 뱉고 떠난 자들은
실직과 파산 사이를 쫓기다
뒷덜미를 붙들린 채 고향으로 돌아와
하나같이 자동차나 보험 상품을 팔았다.
둘을 같이 팔기도 했다.
그러므로 물 한잔을 건네는 것은
목말라본 사람들의 덕성이며
삶이란 서로 권하고 축이고
또 이렇게 밥 한끼 얻어먹고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지만
떠안기는 것이 천국이든 안전이든 자동차든
무엇을 팔든 실패는 하나의 기술이다.
실패한 사람의 손도 뿌리친다면
하느님은 누구의 손을 붙잡겠는가.
창비시선 392 이현승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 70-71p
얼띤 드립 한 잔
실패가 있기에 내가 있다. 실패가 없다면 나는 오히려 암흑천지에서 나락으로 나락에서 지옥으로 헤매다가 어느 목적지 하나 없이 사장될 것이다. 그러니까 실패란 얼마나 안온한 집인가 싶다가도 결과로 보면 그것은 나의 생명을 부지하며 잠시 잠깐이라도 진두지휘陣頭指揮했던 수장이었으면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교도소는 재소자를 교화시키는 곳이지만 그 얼굴을 빤히 보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듯 가는 영혼까지도 감싸 안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소외지대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죄를 짓고 산다는 말, 교도소에서 말이다. 무엇을 배우는 것도 어떤 장소가 있기에 가능하다. 그 길은 목적한 바가 있으므로 당하는 것이며 끝내 꾹 다문 입의 열쇠를 얻는 느낌으로 산다. 그렇다면 바깥으로 나간 소의 이야기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일까 아니면 종신終身 회개悔改일까 따지다가도 결국, 올 것은 오고 뒈지도록 두들겨 맞아도 바깥바람을 쪼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의 본능이겠다. 자동차처럼 온 세상 누비며 다니는 것도 보험상품처럼 누굴 지켜준다는 보장도 없는데 왜 그리도 자에 목매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 한 잔, 그렇다. 물처럼 낮은 곳을 지향하라는 노자의 덕에 지금도 잠깐 안심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물 한 잔처럼 누구에게는 목축임이 될 수 있고 그것으로 한 생명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진리이기에 애써 우리는 실패를 거닐며 거듭하며 또 들이대고 부딪고 깨지면서도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참 마음 아픈 일의 반복인 셈이다. 오늘도 형광등은 밟고 머리는 아직도 굳어 있으므로 물처럼 흐르는 저 곡선의 힘을 구애하며 동물적인 감각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하느님은 이를 곡해하실까? 씩 웃어 본다. 나의 미래는 절대 밟지 않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죄는 더욱 가중될 것이며 그 돈에 나는 기어코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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