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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시/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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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40회 작성일 21-06-27 20:32

본문

세상의 모든 시 





곽재구






나는 강물을 모른다

버드나무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둘이 만나


강물은 버드나무의 손목을 잡아주고

버드나무는 강물의 이마를 쓸어준다


나는 시를 모른다

시도 나를 모른다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는다


어릴 적 아기 목동이었을 때

소 먹일 꼴을 베다

낫으로 새끼손톱 베었지

새끼손톱 두쪽으로 갈라진 채 어른이 되었지


시가 내 새끼손톱 만지작거리며

괜찮아 봉숭아 물 들여줄게 한다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한다

흐르는 원고지 위에 시를 쓰다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을 것이다


-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에서,  2021  -








 * 시를 왜 쓰고 또 왜 읽는가, 라는 질문에 

   시가 내 아픈 새끼손톱 만지작거리며, 내 강물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할 수 없다면 조금은 허탈할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를 만져주고 나를 살게 해주었던 시들 외에는,

   읽고 난 후엔 대부분 안개처럼 사라져갔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상을 받은 시라 할지라도, 남들이 좋은 시라고 소개해줘도,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면 남이다.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는 것보다

   내 마음 항구에 입항한 시를 꽉 붙들고 오래 사귀며 늙어가는 것이 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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