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이름/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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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이름
손미
수영을 한다
내가 찔러서 물이 아프다
발전소에서 솟구치는 수증기처럼
나는 나를 밖으로 빼내려 해 보았다
그런 연습만 하는 하루도 있었다
해변에서 맨발로 걸었다
내가 닿아서 네가 아프다
화장실에서 자주 울었다
유령선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땡그랑땡그랑
배수관을 타고 이쪽으로 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세수를 한다
얼굴을 가리면서 오는
물의 속을 뒤지면
내가 만져서
물이 아프다
깜빡깜빡 불이 켜진다
몸을 씻을 때
등을 톡톡 치는 물방울
거기 누가 들어 있나
맥박이 뛰어서
두드리며
이름을 불러서
끌려나오는
모든 물이 아프다
- 시집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에서, 2019 -
* 찌르고, 닿고, 뒤지고, 두드리고, 만지는 행위는
상대와의 관계를 위해 우리 몸이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경고등처럼 불이 켜지면서 종내 아픔이란 것이 올 때가 있다.
그것은 실연일 수도 있고, 가족과의 이별일 수도 있고,
여러 모양의 아픔일 것이다. 그런데,
과열된 스팀 파이프에서 수증기를 빼내려 하듯,
나를 아픔의 밖으로 빼내려 노력해 봐도 안 되는 때가 있다.
아픔이 물의 이름이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시는 답을 내놓지 않고 끝을 맺었다. 그건 아마도,
'아픔을 제대로 아파해야 그 아픔을 이길 수 있다'
라는 행간을 독자들이 스스로 찾아 읽으라는
시인의 마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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