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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정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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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52회 작성일 21-04-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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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록담 





 정지용







 1


 절정(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소모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진(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2


 암고란(巖古蘭), 환약(丸藥)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4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퉁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 육천 척 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여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어진다.


 6


 첫 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 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어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인 송아지는 움매-움매-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고 매여 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틔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7


 풍란(風蘭)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 휘파람새 휘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솨- 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칡넌출 기어간 흰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조친 아롱점말이 피하지 않는다.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삿갓나물 대풀 석이 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식물을 새기며 취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어 산맥 우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이겨 붙인 채로 살이 붓는다.


 9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좇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골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었더니라.





 * 흰 돌바기 : 흰 돌 박힌

 ** 놋낫 : 빗발이 굵고 곧게 뻗치며 내리 쏟아지는 모양



 - 시집 <백록담>에서, 1941, 초판본 -











 * 신동엽의 [산문시]. 서정주의 [상리과원]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문시다.

  오늘처럼 간간이 비 오는 날 읽으면 더 좋다.

  내가 백록담을 오르내리는 기분이 들게 한다.

  고어체도 그윽함에 한몫 한다.

  낡을수록 좋은 건 시(詩)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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