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너의 이야기가 너무 소란스러워/유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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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은 너의 이야기가 너무 소란스러워
유병록
지난주에 개봉한 영화와
플라스틱 사용이 거북이에게 미치는 영향과
지리산 자락의 이색적인 펜션과
요즘 인기 있는 가수와
결혼식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했지
대화가 끊기지 않게
너에 대해 말하지 않기 위해
떠올려야 했지
너를
너와 닿아 있는 것들을
행여라도 말하지 않기 위해
침묵이 끼어들 때면 희미하게 들렸지
우리를 부르는 다정한 호칭이
등 뒤로 지나가는 것만 같았지
사뿐한 발걸음이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해야 할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므로
다행히도
우리는 너와 무관한 이야기만을 나누었는데
안도하며 일어서는데
이상하게도
온통 너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 같았지
- 시집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에서, 2020 -
* 이별한 연인이 지인의 결혼식에서 만나 모르는 척, 안 그런 척, 외면하는 장면이다.
뭐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만 이게 쉽다.
쌍욕을 해대면서도 사랑은 어쩌면 아픔을 감출 수 없으리라.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고 가수는 노래하지만,
사랑은 잊혀지는 게 아니라 묻혀진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묻으려 할수록 솟구쳐오르는 게 또한 사랑이니......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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