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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정성수 시와 시작노트 제18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친정아바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44회 작성일 20-04-17 04:15

본문

빈집

 

-정성수鄭城守-

 

고향 마을에 갔었다

구봉이네 집이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구봉이는 대처로 나가고

구봉이 아버지는 천국으로 가시고

구봉이 어머니는 요양원으로 가시고

 

빈집이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 시작노트 □

 

초가지붕에는 먹을 수 없는 버섯들이 자라고 마루는 여기저기 내려앉았다. 양철대문은 작은 바람에도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마당에는 잡초가 웃자라 호랑이 새끼 치게 생겼다. 마당구석 우물가에는 두레박 끈 떨어진지 오래다. 몇 남은 늙은이들이 마을을 지킨다. 앞산 밑 다랭이 논도 허허롭고 코밑 텃밭은 묵정밭이다. 동네 모정 옆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여전히 푸른 그늘을 펴주고 냇가 송사리들은 예와 갔지만 가난은 여기저기 딱지가 되어 앉아 있다. 애기 울음소리 들린다는 말은 옛날이야기고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추석이 오고 설날이 와도 고향이라고 찾아오는 사람을 본다는 것은 꿈에 떡 얻어먹기다. 부동산 중개인이 들락거리더니 아파트가 쳐들어온다고 난리다. 무너져 가는 고향을 잊어버린 탕자들은 어느 거리를 헤매고 있는지?

 

 

가족사진

 

-정성수鄭城守-

 

아버지는 입을 굳게 다물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어깨에 몸을 비스듬히 붙인 채

의자에 앉아 있다

큰 놈은 교모를 삐딱하게 쓰고

막내 누이는 토끼눈을 떴다

육남매가 한결같이 부동자세다

 

강물은 소리치며 흐르고 나무는 자꾸만 아래로 발을 뻗어도

사진 속 가족들은 여전히

옛날처럼

앞만 바라보고 있다


□ 시작노트 □

 

유년의 사진관에서 사진사가 오른손에는 마그네슘 트레이를 왼손에는 셔터 릴리즈를 들고 ‘하나, 둘, 셋’ 소리치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는데 익숙하지 않은 가족들은 잔뜩 긴장을 하거나 눈을 홉뜨고 겁먹은 표정이라도 지으면 사진사는 예외 없이 ‘김치이~’라고 누런 이빨을 내보이기도 했다. 마그네슘이 터질 때 나오는 연기와 냄새가 사진관에 가득 퍼지면 비로소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기도 했다. "펑!"소리를 내며 터뜨린 마그네슘 섬광과 함께 인화된 흑백사진 속에는 가족의 끈끈함이 묻어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방송국 카메라를 들이대도 표정관리를 하고 손가락을 V자를 만들어 렌즈 앞에 흔들어대기도 한다. 흑백사진 속 흑백의 일상과 칼라시대의 칼라의 일상이 격세지감이다.

 

 

애호박

 

-정성수鄭城守-

 

숫벌 한 마리가

호박꽃 속으로 들어가더니

불을 켰다

꽃등 환하다

 

암벌 한 마리가 뒤따라 들어가더니

황급히 불을 끈다

 

장지문에 실루엣 선명하다

치고패고

한 바탕 난리가 났다

 

열 달이 지나자

애호박이 열렸다

흐무지다

애기 불알 같은 저 애호박

 

□ 시작노트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방 한 칸을 들이면 가정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은 기적이자 역사적 사건이다. 존귀한 인연으로 한 평생을 해로하는 부부도 있지만, 함께 살면서도 원수지간처럼 살거나 등을 돌려 이혼을 하는 부부들도 있다. 겉으로는 원앙처럼 사이좋은 부부인듯 행세하면서도 속으로는 남보다 못한 무늬만 부부인 부부도 있다. 한 번 맺은 부부라는 인연을 선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낮추는 최소한의 인간적 모습을 보여주는 부부가 진정한 부부인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사는 외로운 자유보다 남녀가 만나 티걱태걱 살면서 가정을 지켜갈 때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부부는 수많은 갈등과 고민은 물론 역경을 넘어 서로 존재의 근거가 되어줄 때 달콤한 행복감을 얻을 수 있다. ‘人’ 즉 사람인이라는 한자는 서로 기대라는 뜻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정성수鄭城守-

 

어머니 배가 고파요. 밥 주세요. 보릿고개는 왜 이리 높은 가요. 해지기 전에는 넘을 수가 없을 것 같네요. 낮에 친구가 눈깔사탕 먹는 것을 보고 침을 많이 흘렸거든요. 뭐든지 좀 주세요. 어머니

 

국제표 통고무신을 꿰매고 또 꿰매서 신었다.

빈병을 모아 아이스케끼를 사먹고 누런 이빨을 보이며 자랑을 했다.

도시락 뚜껑 아래서 납작 엎드린 계란부침이 최고의 자랑거리었다.

새 옷을 얻어 입고 싶어 몇 달 전부터 손꼽아 설날을 기다렸다.

김일 선수의 박치기를 보고 싶어서 텔레비전이 있는 친구에게 갖은 아부를 했다.

풀대죽을 쑤어먹고 아침이면 공동화장실 앞에서 몸을 꼬며 순서를 기다렸다.

 

허기의 세월이 있었다.

코끝이 찡한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

배가 고파요. 밥 좀 주세요.

빈 밥그릇을 들고 보채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 시작노트 □

 

우리민족은 5 ․ 60년대까지만 해도 지지리도 못 살았다. 이 시절을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말한다. 음력 3, 4월에는 굶기를 밥 먹듯이 해서 부황난 몰골은 말 그대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보릿고개다. 보릿고개는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서 농가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이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길가에 난 쑥으로 멀건 죽을 만들어 먹고 산에서 칡뿌리를 캐다 가루를 만들어 끓여 먹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 그런 걸 먹은 사람들은 얼굴이 붓기도 했다. 특히 농촌 사람들에게는 넘기 고통스럽고 무서운 고개였다. 그 고개는 높고 험한 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늑대나 호랑이가 사람에게 해코지 하는 고개가 아니었다. 보릿고개는 치유약이 없는 가난이라는 질병이었다.

 

 

하지

 

-정성수鄭城守-

 

아내가 감자를 쪄내왔다

 

울퉁불퉁한

감자

하지감자

 

거칠고 구리빛이였던

어머니의 손등 같다

 

껍질을 벗기자

어머니가

앞가슴을 풀어제끼며

배고플틴디 많이 먹으라며

웃고 있었다

 

지금 쯤 천국에서

자식들에게 보낼 감자를

보따리 보따리

싸고 있을 어머니

생각만 해도

감자 같은 것이 목구멍을 막는다

 

□ 시작노트 □

 

김동인의 소설 ‘감자’는 암울했던 시대가 보여주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거기에는 주인공 복녀의 가난을 탈출하기 위한 인간적 몸부림이 녹아있다. 신경숙의 소설 ‘감자 먹는 사람들’에는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평생 농부로 늙으신 아버지,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던 아저씨. 모두 하층민의 전형적 인물들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등잔불 밑에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접시에 가져가는 바로 그 손으로 감자를 수확했다는 사실이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지난 생이 어땠는지를 안다고 한다. 6남매를 먹이고 키워낸 우리 어머니의 손은 엄청나게 거친 손이었다. 어머니가 소쿠리에 담아내 온 뜨거운 감자를 한입 가득 물고 후우후우~ 불다가 하아! 허어! 김을 토하며 천장을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감자를 먹으면서 나는 자라났다. 어머니의 감자는 소금을 쳐서 먹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치면서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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