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고향별이 있다면 =정재학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내게 고향별이 있다면
=정재학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고향이 없다.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반가움이 없는 고향이 무슨 고향이람. 같은 서울 사람이라고 반가워한다면 고양이가 웃겠다. 고양이별의 고양이도 웃겠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지구가 고향이 아닌 것 같다. 왜 이리 지구가 익숙하지 않고 힘들담. 환생이 전 우주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지구에서는 더 이상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아주 지긋지긋한 느낌.....나의 고향별은 어떤 곳일까? 연분홍빛 크리스털 호수가 허공에 떠 있을까? 액체도 고체도 아닌 크리스털 물. 그 위로는 산처럼 큰 거대한 날개를 가진 새들이 날고, 나의 고향별 사람들은 투명한 몸이지 않을까? 투명한 살갗 속에는 그대로 빛들이 혈관처럼 움직이고. 옷도 필요 없는 빛의 몸. 왜 자꾸 막연하게 지구에서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까. 고향 행성 동료들도 곁에 없는데. 고향별이 있다면 그곳은 얼마나 많은 음악을 들어야 갈 수 있을까. 다른 지구들에서도 나는 쓸쓸하다. 문득 밤하늘을 보니 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문학동네시인선 174 정재학 시집 아빠가 시인인 건 아는데 시가 뭐야? 086p
얼띤 드립 한 잔
시에서 서울과 고향은 대치 관계다. 서울이 중심이면 고향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시의 몸짓이 뻗는 목표지다. 그러고 보면 고향은 고향故鄕으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고향膏香이든 고향告香이든 시 주체가 닿지 않는 어떤 향에 가깝다. 고향을 더욱 구분 짓기 위해 고향별로 명명하고 지구까지 운운했다. 지구는 earth의 개념이 아니라 branch다. 그러므로 서울에 거주한 시 특성을 좀 더 나열하고 지구에 대한 개념을 좀 더 살린다면 아주 멋진 시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 특성을 보면, 쓸쓸하다. 고독하다. 익숙하다. 죽음이 있는 곳. 아주 지루한 느낌만 받을 뿐. 그리고 물. 혼탁한 세계관을 갖는다. 이에 비해 지구는 고향 사람처럼 반가운 존재며 힘든 존재다. 무색인 물이기보다는 연분홍빛 크리스털 호수다. 거기다가 익숙하지가 않다. 생명의 출현이 존재하는 별이다. 산처럼 아주 큰 거대한 날개를 가진 새며 투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 있다. 동물적이다. 그들은 허공에서만 존재하는 아주 지긋지긋한 식물인 것도 마찬가지다. 내내 이쪽을 감시하는 양 눈길을 주고 있지만, 그 틈을 타 도망이라도 해야 살 듯한 존재 시 주체를 우리는 보고 있다. 문득 고독한 처사를 보며 자중하지 않은 언어에 섣부른 추리로 오늘도 벽돌 한 장 쌓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