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치모 =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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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치모
=장이지
사춘기 이래 내 친구는 줄곧 친누나와 함께 살다가 서른 살에 자살했다. 그는 샤워할 때 항상 치모를 살짝 잡아 뜯곤 했다. 그 누나가 방에서 치모를 보면 질겁한다고, 빠질 것을 미리 정리하는 것이라고.........그는 생활의 때가 낄 새도 없이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최근 나는 독신자 아파트로 방을 옯겼다. 치워도, 치워도 방구석에서 치모가 꿈틀꿈틀 기어나왔다. 전에 살던 남자의 더께에서 악취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어떤 지도라고도 할 수 있어서, 나는 남자의 일상을 조금 내려다보았다. 고독이란 불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난잡하게 뒤엉킨 치모를 보다 걸레를 손에 쥔 채 잠시 망자를 떠올렸다. 차라리 그도 불결하게 살았다면.........고독을 조금씩 비우며, 너저분하게 살았다면.........그냥 살았다면.........
샤워를 하다가 치모를 잡아 뜯어본다. 흰 것이 눈에 띈다. 흰머리를 발견했을 때와는 또 다르다. 흐르는 물에 흘려버린다. 물은 아래로 계속 흐른다. 저 세상으로.........
문학동네시인선 106 장이지 시집 레몬옐로 082p
얼띠 드립 한 잔
시 서두는 마치 진술처럼 부드럽게 흐른다. 사실, 친구가 서른 살에 자살했을 수도 있다. 워낙 자살률이 높은 나라다 보니, 주위 그런 친구 한두 명씩은 있거나, 혹은 자살을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여기서는 시로 봐야 하니까, 자살은 피안과 사바세계의 기준점이다. 친누나와 함께 살았지만, 누나는 누나처럼 보이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나를 포개며 다진 것들로 자는 오고, 자살은 남이 뽑아 오른 것이 아닌, 직접 목을 자른 그러니까 편찬에 이른 것이 된다. 사실 나 또한 이쪽이니까 세상은 조용하지만, 그런대로 사는 맛은 있다. 하여튼, 생활의 때가 낄 새도 없이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여기서 느낀 건, 시 또한 생활의 때가 묻어나 있으면 독자는 읽는 맛을 더한다. 너무 일찍 낸 것들은 도무지 독해의 맛이 없다. 시라도 시인의 철학이라든가 뉘앙스 혹은 세상사 여러 고민과 더불어 오는 시 문장은 오랫동안 가지고 싶은 책 중 하나가 된다. 한날 조카가 내 머무는 곳에 들러 처음 내뱉는 말 “고모부는 어디를 가셔도 책이 넘치네요” 인생에 있어 꼭 읽어야 할 책은 손가락 안에 든다. 그중 시집은 그에게 권하지도 않았다. 모두 돈과 처세와 문명 그리고 역사에 관한 것만 몇몇 권했다. 하여튼, 최근 나는 독신자 아파트로 방을 옮겼다. 독신자, 홀로 믿음을 갖는 자다. 그러니 치워도 치워도 방구석은 치모가 꿈틀거릴 수밖에 없다. 치모는 검정을 상징한다. 전에 살던 남자의 더께에서 악취가 피어올랐다. 전에 살던 남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본인으로 더께는 몹시 찌든 때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수정이 덜 된 시초며 다듬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고독이란 불결한 것인지도 모른다. 순수하다면 자살이거나 타살이거나 혹은 끌려가는 목이었다든가 했을 것인데, 망자를 보며 이미 발표한 시집을 보며 그도 불결하게 살았다면, 아직 여기에 있겠지. 고독을 조금씩 비우며 너저분하게 살았다면 시인이 못 되었겠지. 그냥 살았다면, 차라리 속 편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샤워하다가 치모를 잡아당긴다. 시를 쓴다. 흰 것이 눈에 띄고 여기서 흰 것은 자를 옮길 수 있는 시 객체를 상징한다. 흰머리는 뭘까? 무엇을 상징했을까? 사고나 바탕 아니다. 흰 것과 같은 자의 부류지만, 흰 것을 좋아하지 않는 무리, 비주류를 이루는 자일 것이다. 흐르는 물에 흘려버린다. 세상에 내보낸다. 물은 진리는 아래로 밑으로 계속 흐른다. 피안에서 사바세계로 내려간 진리 구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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