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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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전동균
노랑멧새들 총알처럼 덤불에 박히고
마루 밑 흰둥이는 귀를 바르르,
갑자기 컴퓨터 화면이 시커메졌다
화악, 입안 가득 차오르는
화약 같은 생흙 냄새
세상이 아픈 자들, 대속(代贖)의 맨발들이 지나간다
문학동네시인선 216 전동균 시집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 066p
얼띤 드립 한 잔
소나기 내리는 장면을 보고도 이렇게 멋진 시가 될 수 있음을 본다. 여기서 노랑 멧새는 비를 제유한다. 비는 우측 세계관을 대변하며 견줄(比)만한 그 무엇이겠다. 노랑과 멧새에 대한 어감도 한 번 생각한다. 총알, 거느리거나 모았거나 아니면 다스림이 가능한 한 혹은 무덤이거나 귀가 밝거나 하는 총에서 알 그러나 총알처럼 그 속도는 순식간이다. 덤불은 지면 상황을 묘사한다. 풀들이 서로 엉키어 있다. 해석되지 않는다. 마루라는 단어도 곱씹어 본다. 말 모양의 겹겹 쌓은 판자때기 죽 깔아놓은 현상 역시 지면과 그 속성이 달리 보이지는 않는다. 그 밑 흰둥이, 백을 상징하며 동물적 심성과 무엇을 보고 짖을 듯한 태세까지 갖췄다. 그러나 귀를 바르르, 동사는 아무래도 ‘떨고 있다’라거나 ‘떤다’가 맞을 거 같다. 마치 죽음을 예견하듯이 피안으로 돌아갈 듯한 몸짓과도 같다. 그것은 하나의 징조며 예시다. 갑자기 컴퓨터 화면이 시커메졌다. 검정의 세계가 도래하고 세상은 깜깜하다. 이미 한쪽 경계를 넘어간 묘사다. 화악, 花萼은 온화한 정을 화약은 火藥처럼 들리겠지만 和約으로 읽으며 온화한 정감미를 다져본다. 세상이 아픈 자들, 대속의 맨발들이 지나간다. 시 객체를 향한 맨발의 몸짓은 육탈과 시 승화로 여러 다도의 출현을 예견하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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