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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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정재학
내 이름은 가르시아. 열다섯 살이야. 관광객들의 지갑을 훔치다 흠씬 두들겨 맞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지만 난 당당한 집시야. 교회나 묘지 같은 곳에서는 도둑질 안 해. 먹고살기 위해 다른 데서 훔치는 건 괜찮아. 취업도 안 되는걸. 집시들 간의 약속은 어긴 적 없고 우린 노인과 자식을 절대 버리지 않아.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도 버리지 않고. 매춘부인 어머니도 나와 내 누이동생을 버리지 않았지. 누워 있지만 잠들지 못하는 초승달 아래에서 난 오늘도 플라멩코를 연주하네. 기타 소리와 누이의 노래가 쉼표처럼 앉아 있는 어머니의 눈동자를 먹구름처럼 얼룩지게 하지. 어제처럼. 내일처럼. 누이의 울대와 내 썩은 나무토막에서 울리는 음파가 적막을 태우며 사방으로 흩어지네.
문학동네시인선 174 정재학 시집 아빠가 시인인 건 아는데 시가 뭐야? 033p
얼띤 드립 한 잔
집시는 늘 중심이었다. 자리를 보며 그들은 움직인다. 언제나 떠돌다가도 늘 돌아와 앉은 이집트, 내일을 위해 잘 정돈된 음악으로 거리만 들여다본다. 아주 오랫동안 잊혀 있어도 그들의 색깔이 변하거나 모양이 변한 건 없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차별을 낳았을지는 몰라도 제갈 곳 분수는 알았다. 비록 영국과 중동의 혼혈아일지언정 장례식 처리와 청소 같은 잡일은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은 말을 하지 않음으로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승을 전수하지 않아 삶의 비법 또한 도통 알 수가 없다. 거저 꽉 닫힌 세계관인 것 같아도 어느 문명인보다도 밝은 우주관을 갖는다. 때로는 유랑생활을 중단하고 발칸반도에 정착하여 낫과 곡괭이를 들며 밭을 갈 때도 있었다. 하나의 영역에서 하나의 국가에 이르기까지 쫓겨난 집시는 수없이 많다. 인도나 이란, 이집트 등지에는 백만 명 이상의 집시가 있었다. 이외 국가에도 소수의 집시가 살고 있으며 각국 정부로부터 쫓겨난 집시까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집시는 오늘도 생산되며 집시를 펼치는 순간 새로운 동화와 혼혈은 생김으로 다만 플라멩코 반주에 발맞추어 노래 부르는 일은 그들의 유일한 취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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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집시’는 시 주체다. 내 이름은 가르시아, 너무 멋진 표현이다. 가르시아. 열다섯에 대한 수의 개념도 좋지만, 현실적인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 어리다. 매춘부인 어머니, 봄을 사는 어머니다. 잘 살려낸 시적 표현을 본다. 누이와 울대, 시가 간결하기까지 그간 쌓은 누와 발성을 생각하면 집시처럼 행방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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