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숲 =조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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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
=조말선
한 점 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풀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서 한 점 풀을 바라보고 있었다 풀은 미풍에도 한들한들 동요하고 있었는데 한 점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한 점 풀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한 점 풀이 불어났다 내 눈 속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불어났다 미풍을 의심하는 동안 한 점 풀이 동공을 뚫고 올라왔다 눈에서 한 점 풀을 뽑는 동안 한 점 풀이 발바닥을 뚫고 올라왔다 죽는 순간에도 조직의 얼굴을 모르는 점조직의 일원처럼 한 점 풀은 모르는 채 불어났다 한 점 풀은 뽑히면서 불어났다 점은 이동하지 않고 불어나는 것이고 자라지 않고 우거지는 것이라고 한 점 풀이 불처럼 번졌다 모르는 채 바랭이풀이 바랭이풀끼리 모여 있었다 모르는 채 쑥대가 쑥대끼리 모여 있었다 한 점 풀은 자라고 자라서 선분이 되지 않고 불길에 휩싸이듯이 점점 풀숲이 되어갔다 눈이 풀숲에 가려졌다
문학동네시인선 172 조말선 시집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120p
얼띤 드립 한 잔
흰죽=崇烏
한 동이 죽을 먹고 있었다 이 죽을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 죽은 먹고 있었다 죽은 뜨거운 불에 끓고 있었는데 한 동이에 담겨 있을 뿐이었다 한 동이 죽을 젓는 동안 걸쭉하게 부풀어 올랐다 부푼 한 동이 죽을 그릇에 담고 숟가락으로 퍼먹는 한 동이의 죽, 허기는 내뿜고 허기는 가득했다 정신은 혼미했으나 전신은 순간 마비되었다 나도 모르게 한 동이 죽을 위해 한 동이 죽을 밀쳤고 구석으로 밀려 나간 한 동이의 죽은 허기를 잊은 채 식고 있었다 눈에서 어제 긁은 한 동이의 죽을 지우며 돌아서는 한 동이의 죽을 붙잡았다 뒤돌아본 한 동이의 죽은 한 동이의 죽에 빠져 있었다 무어라 얘기할 수 없는 한 동이의 죽에 찰떡같이 매달려서 사정하는 한 동이의 죽, 안 들어줄 수 없는 죽사발에 발로 문대어 보고 매매 핥아 보고 도로 상처만 도지는 한 동이의 죽 쑤어 먹이는 족족 오바이트한 흔적과 역겨운 냄새만 깔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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