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촌旌門村 =백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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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촌旌門村
=백 석
주홍칠이 닐은 정문旌門이 하나 마을 어구에 있었다
‘효자노적지지정문孝子盧迪之之旌門’—몬지가 겹겹이 앉은 목각木刻의 액額에 나는 열 살이 넘도록 갈지자字 둘을 웃었다
아카시아꽃의 향기가 가득하니 꿀벌들이 많이 날어드는 아츰
구신은 없고 부헝이가 담벽을 띠쫗고 죽었다
기왓골에 배암이 푸르스름히 빛난 달밤이 있었다
아이들은 쪽재피같이 먼 길을 돌았다
정문旌門집 가난이는 열다섯에
늙은 말꾼한테 시집을 갔겄다
정본 백석 시집 문학동네 62p
얼띤 드립 한 잔
시는 읽기 나름이다. 어떤 전문가는 이 시를 두고 일제강점기와 식민 제국주의적 폭력 그리고 식민지 민족의 고통을 그렸다고 하는 이도 있다. 물론 백석이 살았던 시대를 보면 그 시대상과 맞물려 한 덩이의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백석은 또 그때를 놓치지 않고 시를 적는데 마음을 놓은 것도 맞겠다. 뭐 그래도 어디까지나, 글을 보기 위해 정문촌을 본다. 우선 낯선 용어부터 정의를 내려본다면 정문旌門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그 집 앞에 세웠던 붉은 문이다. ‘닐은’ 색이 바랜 것을 말하며 ‘몬지’는 먼지의 고어다. ‘띠쫗고’ 치 쪼고 그러니까 위를 향해 쪼고 있음을 의미한다. 쪽재피는 ‘족제비’의 방언이며 ‘말꾼’은 말몰이꾼이다. 주홍칠이 닐은 정문旌門이 하나 마을 어구에 있었다. 붉은 칠이 닳은 정문을 백석은 바라보고 있다. 정문旌門은 이미 자타가 공인한 문이다. 우리가 이미 발표한 시를 눈 닳도록 보고 있는 것처럼 남문을 가리킨다. ‘효자노적지지정문孝子盧迪之之旌門’—몬지가 겹겹이 앉은 목각木刻의 액額에 나는 열 살이 넘도록 갈지자字 둘을 웃었다. 효자노적지지정문孝子盧迪之之旌門. 노적지(盧迪之)는 평안북도 정주지방에서 살던 노씨 집안이 배출한 효자다. 조정에서 정문(旌門)을 표창까지 한 것이다. 노盧는 성씨를 적迪은 나아가는, 이룬 것, 이끌다, 따르다 계승한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효자를 배출한 집안으로 타의 모범으로 삼는 일이다. 근데 먼지가 겹겹 앉은 나무 판각의 이마에 지나지 않고 열 살이 넘도록 갈지자 둘을 보고 웃었다. 열 살 십세十歲다. 완벽한 개체를 의미한다. 갈지자 둘이니까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야 한다. 써야 한다. 써야 한다. 효자처럼 말이다. 골목 어느 한쪽은 효자와 같은 문자를 갈구한 셈이다. 아카시아꽃의 향기가 가득하니 꿀벌들이 많이 날어드는 아츰. 아카시아꽃은 백白 흰색을 상징하며 지면의 은유다. 꿀벌은 밀봉蜜蜂으로 단단히 붙여 봉하는 일 밀봉密封과 겹친다. 아침은 나를 찌르거나 나를 적시거나 나를 잠재우는 일로 다듬어야 할 그 무엇이다. 구신은 없고 부헝이가 담벽을 띠쫗고 죽었다. 구신廏神은 귀신의 방언이겠지만 구신은 가축을 다스린다는 귀신으로 어느 쪽으로 읽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 구체를 관장하는 상징물로 닿으며 부엉이는 새로 번쩍거리는 혼을 은유했겠다. 담벽 역시 지면의 제유며 띠쫗고 위를 향해 보고 죽었다. 글을 읽은 셈이다. 기왓골에 배암이 푸르스름히 빛난 달밤이 있었다. 기와起臥 일어남과 누운 것으로 지붕을 이는 건축자재와 겹치고 기왓골이니 단골, 골목과 마찬가지로 뇌의 골수와도 겹친다. 배암은 사족으로 바위처럼 닿겠지만 움직이는 동물적 심성까지 그려 넣었다. 푸르스름히 빛난 달밤, 파릇파릇하니 살았고 환한 달덩이의 밤을 보고 있다. 이에 비해 아이들은 쪽재피같이 먼 길을 돌았다. 아이는 자를 상징하며 방향은 남녘이다. 足濟比, 혹은 足濟非처럼 돌고 또 돌고 되돌고 하면서 정문은 그렇게 닳았다. 정문旌門집 가난이는 열다섯에 늙은 말꾼한테 시집을 갔것다. 가난은 궁핍의 은유로 어디 내놓을 곳 없이 묻혀 있음을 열다섯에 완벽의 수 십에 나 오吾에서 오지의 오奧로 뻗는 자의 이동, 이미 다 죽어가는 늙은 말꾼한테 시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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