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약湯藥 =백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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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약湯藥
=백 석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六味湯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萬年 녯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녯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정본 백석 시집 문학동네 75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 ‘탕약’은 달여서 마시는 한약이다. 옛사람을 생각게 한다. 지금은 몸이 아프면 병원이나 가까운 약국에 들러 어디가 불편하다고 하면 금시 약을 사 먹을 수 있지만 약 백여 년 전에는 쉽게 약을 살 순 없었을 것이다. 특히 서민의 삶은 약 살 형편도 못되어 대충 민간요법으로 뭉뚱그린 적도 꽤 많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죽어 나간 사람도 많겠다. 그나마 탕약을 끓일 수 있었다면 그래도 제법 형편은 돌아가는 집안이지 않았을까.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 탕관에 약이 끓는다. 토방은 마당보다는 높은 뜰이다. 질화로는 질흙으로 구워 만든 화로, 곱돌 탕관은 광택이 나는 매끈매끈한 암석으로 만든 것으로 약재를 달일 때 쓴다. 눈과 곱돌 탕관에 든 약은 색으로 보면 대조적이다. 흰색과 검정에 가까운 물질, 그리고 눈 설雪과 이목이 함께 한 눈 목目과 겹친다. 곱돌 탕관이 굳은 물질로 시의 고체성을 대변한다면 그 속에 펄펄 끓는 약은 내 온몸을 달이고도 남는 시의 향미를 끌어올리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이다. 삼과 숙변과 목단과 산약과 택사는 모두 한약재다. 이 한약재를 잘 몰라도 시 읽는데 크게 지장 가는 건 없다. 각종 언사가 들어있는 탕관은 내 마음을 보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육미탕이다. 여기서는 여섯 육六이지만 몸과 피부로 환치한 육肉으로 보아도 무관하겠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약탕관과 김에서 오는 시각적 풍미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에서 오는 후각 그리고 약이 끓는 소리에서 청각적 묘미를 자아낸다. 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교감하는 효과를 자아냈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다 달인 약과 하이얀 약사발에서 시각적으로 대조를 이루며 백지에 옮겨놓은 마음은 예사롭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萬年 냇적이 들은 듯한데. 하나의 약재를 쓰는 것도 옛사람의 지혜가 들어가 있으니 하루 이틀 생겨난 치료법은 아니므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녯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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