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 - 고영민 > 내가 읽은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내가 읽은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내가 읽은 시

    (운영자 : 네오)

 

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 - 고영민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安熙善3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81회 작성일 18-10-22 12:27

본문


23ad7a073524d887f805e21551bebd10_1540178707_35.jpg




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


이 저녁엔 사랑도 事物이다
나는 비로소 울 준비가 되어 있다
천천히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늙은 나무를 보았느냐
서 있는 그대로 온전히 한 그루의 저녁이다

떨어진 눈물을 주을 수 없듯
떨어지는 잎을 주을 수 없어 오백년을 살고도 나무는
기럭아비 걸음으로 다시 걸어와 저녁 뿌리 속에 한 해를 기약한다
오래 산다는 것은 사랑이 길어진다는 걸까 고통이 길어진다는 걸까
잎은 푸르고, 해마다 추억은 붉을 뿐

아주 느리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저 나무의 집 주인은 한 달 새 가는귀가 먹었다
옹이처럼 소리를 알아먹지 못하는 나이테 속에도
한때 우물처럼 맑은 청년이 살았을 터이니,
오늘 밤도 소리를 잊으려 이른 잠을 청하고
자다 말고 일어나 앉아 첨벙,
몇 번이고 제 목소리를 토닥여 재울 것이다

잠깐, 나무 뒤로 누군가의 발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나무를 따라와 이 저녁의 깊은 뿌리 속에 반듯이 눕는 것은 분명
또 다른 너이거나 나,
재차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혼자 사는
저 나무의 집 주인은 낮은 토방에 앉아
아직도 시선이 집요하다

날이 조금 더 어두워지자
누군가는 듣고, 누군가는 영영 들을 수 없게
나무 속에서 참았던 울음소리가 비어져 나온다


                                                                    - 고영민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악어』 (실천문학사)
『공손한 손』(창작과 비평)



<감상 & 생각>

사랑도 事物이라니...

하긴, 그걸 현상으로 보는 것으로 부터
모든 따뜻한 오해가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마저 사물이 된 가슴에서 솟아나는 울음소리는
차라리 정직해서 좋다.

- 사랑을 말하는 많은 느끼한, 언어의 나열보다는

시에 파묻혀 어제의 이별 같은 하늘을 올려다 보니,
먼 구름 같았던 젊음이 사라지는 모습처럼 잔잔하다.

그리고 보니...
추억에 엉긴 늙은 나무의 시간을 낚는 소리마저,
절간의 무심한 풍경(風磬)소리 같은 저녁이다.

길 잃은 어둠에도 스스럼 없이
나아가는 저녁은 참 많은 이야길 시인에게 하고 있다.

아니, 세월의 헛헛한 그림자 같은 나에게도
이 저녁처럼 그리 나아가라고
고요한 목소리로 말해주고 있다.


                                                                              - 희선,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915건 70 페이지
내가 읽은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465 金離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1 0 11-07
146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9 0 11-07
1463 安熙善3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8 0 11-06
1462 安熙善3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99 0 11-06
146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74 0 11-05
1460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83 0 11-05
145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95 0 11-03
1458 安熙善34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2 0 11-03
145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0 0 11-03
145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9 0 11-02
145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98 0 11-01
145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42 0 11-01
1453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6 0 11-01
145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6 0 11-01
145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3 0 10-31
1450 강북수유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82 0 10-31
144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2 0 10-30
144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0 0 10-30
144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1 0 10-30
1446 安熙善3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8 0 10-29
144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65 0 10-29
144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4 0 10-29
1443 金離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88 0 10-29
1442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94 0 10-29
144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78 0 10-28
144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61 0 10-28
143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6 0 10-28
143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61 0 10-27
143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20 0 10-27
143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04 0 10-26
1435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65 0 10-26
143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63 0 10-25
143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15 0 10-25
1432 金離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63 0 10-24
143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6 0 10-24
1430 安熙善3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966 0 10-23
142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0 0 10-23
1428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7 0 10-23
1427 문정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90 0 10-22
142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0 0 10-22
열람중 安熙善3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2 0 10-22
1424 金離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7 0 10-22
142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29 0 10-21
142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64 0 10-20
1421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0 0 10-20
142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4 0 10-19
141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3 0 10-19
141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1 0 10-18
141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24 0 10-17
141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0 0 10-17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