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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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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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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3,062회 작성일 17-11-2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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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정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기형도.jpg

奇亨度 시인 (1960 ~ 1989)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詩 '안개' 당선으로 등단 1991년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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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요즘, 모 M(yung sung)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세습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 비단, 이런 문제는 그 특정 대형 교회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지만 이는 결국, 교회나 신자들 머리 쪽수를 목사 개인 재산목록으로 생각하는데서 비롯되는 거 같다 (내가 어떻게 만들고 일궈온 교회인데, 이걸 내 피붙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줘? 하는) 나는 기독교는 믿지 않지만, 마음의 양식 삼아 이따금 성경도 읽곤하는데 성경 말씀에서는 정의(正義)와 공의(公義)를 강조하는데 반하여 오늘 날 대한민국에서 이런 교회 세습 문제가 발생하는 거 보면 (내 생각에) 그 목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전혀 안 믿는 것 같다 - 왜?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니까 아, 이거 시를 감상하면서 모두(冒頭)부터 샛길로 빠진 느낌 아무튼, 却說하고 기형도, 그의 詩를 읽을 때마다 그의 가슴 속에 가득한 내적(內的)인 분노가 읽혀진다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조치원)라든가,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우리 동네 목사님) 같은 시어의 경우가 그것이다 이 詩에서 가장 극명하게 읽히는 구절은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이다 아마도 生活은 따로 하고 교회 안에서 성경에만 열심히 밑줄을 그어대는, 병든 신앙의 모습을 증오했는지도 모르겠다 詩에서 보자면 이 <우리 동네 목사님>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참 보잘 것 없는, 수완이 없는, 이를테면 실생활에 보탬이 안 되는 능력없는 목사이다 교인들이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밝고 다녀도 뭐라 싫은 내색도 안 하고, 다른 목사들은 잘만 하는 성령치유의 은사묘기 같은 것도 없어서 자신의 아이까지 속절없이 폐렴으로 죽어갔고 목사들의 지상과제라 할 수 있는 교회의 세(勢) 확장에도 이렇다 할 열의가 없어 그냥저냥 신도 수는 반으로 줄고 교인들 앞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지 않았으며, 열정적으로 손뼉치며 찬송가도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결정적으로 작용해서 급기야 그는 집사들에 의해 교회에서 축출까지 당하게 생겼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라는 결구(結句)는 우리 동네 목사님의 깊은 좌절을 쓸쓸한 허무로 달래는듯 하다 근데 이 詩를 감상하면서, 번쩍이는 교회빌딩의 휘황한 목사님보다 우리 동네 (바보 같은) 목사님이 진정, 이 病든 시대에 필요한 목사님이란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이 詩를 쓰며 시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문득 묻고 싶어진다 하지만, 시인은 오래 전에 하늘나라로 표표히 떠나간 사람이어서...... - 희선,
<감상>에 따른 사족 나는 故 기형도 시인의 종교를 알지 못한다 (그가 무슨 종교를 신앙했는지 혹은, 무종교였는지)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소개하는 詩에서 보여주는 비평적 안목과 동시에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설득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기형도 하면, 일단 어둡고 무겁단 느낌이 들곤 했는데 오늘의 詩에선 그 같은 시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인간미가 詩 전편에 가득하다 이런 걸 보면, 그는 속으론 한없이 푸근하고 정겨운 사람이었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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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희서니, 얘는 시감상 핑계대고
왜? 기독교 먹사들만 까느냐 하실 분들이
여기 시말에 분명 계실 것이기에
한 말씀

한국 불교, 또한 철저히 썩었죠
기독교 먹사들만 탓할 일은 아닙니다

요즘 이른바 한 이름께나 하는 중님들치고
계집질, 노름질 안 하는 화상들 별로 없죠
중님들 개인적으로 꼬불치는 돈은 말할 것도 없고
- 그거, 다 신도들의 피 같은 시줏돈입니다

일찍이, 석가도 그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말대 末代에 내 法은 없을 거라고.. (유명무실한 佛法)

저는 한국 불교의 경우, 성철 스님 열반 이후엔
그 법맥 法脈은 거의 끊겨 돌아가셨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법정 스님이 안간힘으로
버티셨으나, 그 또한 역 부족이었다는 느낌

童心初박찬일님의 댓글

profile_image 童心初박찬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보다 안희선님의 고민이 더 깊이 들리지만
저 역시 90%는 동의합니다.
10%는 원인이 어디 있는가?와 종교의 본질이 무엇이었는가?를 묻는 질문들이지만.
본질을 잊은 변질과 왜곡의 시대 아니던가요?
고맙게 읽다 갑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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