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의 시작 / 안도현 > 내가 읽은 시

고니의 詩作 / 안도현

고니 떼가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그 꽁무니에 물결이 여럿 올올이
고니 떼를 따라가고 있다
가만, 물결이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니라
강 위쪽에서 아래쪽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수면의 검은 화선지 위에
고니 떼가 붓으로 뭔가를 쓰고 있는 것,
붓을 들어 뭔가를 쓰고 있지만
웬일인지 썼다가 고요히 지워버리고
또 몇 문장 썼다가는 지우고 있는 것이다
저 문장은 구차한 형식도 뭣도 없으며
대저 漫筆이라 해야 할 듯,
애써 무릎 끓고 먹을 갈지 않고
손가락 끝에 먹물 한 점 묻히지 않는
평생을 쓰고 또 써도 죽을 때까자
얇은 서책 한 권 내지 않는 저 고니 떼,
이 먼 남쪽 만경강 하구까지 날아와서
물 위에 뜻 모를 글자를 적는 심사는
나는 사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쓰고 또 쓰는 힘으로
고니 떼가 과아니, 과아니, 하며
한께번에 붓대를 들고 날아오르고 있다
허공에도 울음을 적는 저 넘치는 필력을
나는 어찌 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 제2회 윤동주 문학상 수상작

# 감상
  만경강에 날아 와 물 위에 노닐고 있는 고니 떼를 보고
  화자는 고니가 떼지어 漫筆 하고 있다고 상상하는데
  그 상상력이 재미 있고 독자가 이해하기가 쉽다
  시를 읽어 내려 가다보면 내 자신이 붓을 들어 팽팽한
  화선지 위에 글씨를 써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안 시인은 시를 이해하기 쉽게 쓰면서도 독자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여러 작품(공양, 쇄빙선,강,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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