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개들은 천국에 간다* =전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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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개들은 천국에 간다*
=전수오
우리는 인간을 사랑해서 무화과 숲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선악을 믿는 인간을 사랑해서 무화과 숲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내일로 가는 꿈속에서 단단히 서로의 목줄을 여미고
반짝이는새것들로가득찬지하상가를냄새처럼다정히통과했지만
문득 돌아보면
등 뒤에서 부드럽게 뭉개지는 선홍빛 주인 주인님
어제 집어삼킨 과육의 잔향을 맡는 오늘을 애도할까
오늘로 건너오지 못한 개들은 무사히 무화과 숲으로 돌아갔을까 한 칸에 한 마리씩 들어찬 파멸처럼 씩씩하게 혼자서 지도를 펼치고 갔을까 우리는 흰 젖을 버리고 지상의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는데 다시 무화과 숲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문밖으로 내쫓긴 달이 짖으면
나는 어쩐지 개가 아닌 것 같은데
우리는 발등에 흰 눈을 덮으며
사냥하지 않고 사냥당하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무화과 숲에서 썩지 않은 우리가 발견될 수 있을까
민음의 시 307 전수오 시집 빛의 체인 44-45p
*1989년 돈 블루스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의 제목
얼띤 드립 한 잔
무화과는 꽃이 피지 않고 열리는 열매다. 사실 인간은 그게 꽃인지 잘 모른다. 안에서 피어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여기서는 꽃보다는 열매에 더 가깝고 잠시 머물다 가는 정류장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시인께서 다룬 무화과 숲은 영원한 시 객체를 상징한다. 무화과 숲이라는 시 객체 앞에 여러 수식어를 넣어 시 주체와 객체 사이의 오가는 사랑을 그렸다. 가령, 우리는 인간을 사랑해서 무화과 숲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했다. 자와 자의 관계로 한 마을을 이룬 자다. 우리는 그것을 시라고 해도 될까? 우리는 내일로 가는 꿈속에서 단단히 서로의 목줄을 여미고. 여미고라는 말, 벌어진 옷깃이나 장막 따위를 바로 합쳐 단정하게 하는 것 동사는 여물다. 그러니까 군더더기 없는 시의 지향성이다. “반짝이는새것들로가득찬지하상가를냄새처럼다정히통과했지만” 띄어쓰기하지 않았다. 끊이지 않고 연속성을 지닌다. 시 객체의 특성을 대변한 문장이다. 언제나 그들은 새롭기 짝이 없고 반짝이는 것들이며 지하상가처럼 밤길 붐비는 미래의 자들로 구성한다. 그런 냄새가 싫지만은 않고 다정히 통과한다. 누가 나의 시를 읽어주는 이가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까! 그러므로 선홍빛 주인 주인님이다. 살아 있다. 죽은 자가 짓고 있는 개를 보며 주인님이라 칭하는 대목이다. 어제 집어삼킨 과육의 잔향은 시를 은유한 문장이다. 어제는 과거며 과거에 아무런 성과를 내지 않았다면 잔향은 없었을 테니까, 잔향이라는 말에 어떠한 성과를 기대해 보는 문장이다. 그것을 맡는 주체는 시 객체다. 오늘을 애도하였다면 그것은 읽었다는 하나의 반증이 된다. 그러나 시 객체는 과연 오늘에 당당히 서 있을까! 그건 의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무화과 숲으로 되돌아가는 개들을 안타까워한다. 더욱, 한 칸에 한 마리씩 들어찬 파멸처럼 씩씩하게 혼자서 지도를 펼치고 갔을까? 참 재밌는 표현이다. 원고지 한 칸에 한 자씩 들어찬 파멸, 이건 시일까 내심 의심해 볼 수 있는 장이며 한 칸에 한 마리씩 들어찬 개를 생각한다면 무슨 도살장에 들어서기 직전의 목숨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등단이란 내 목을 내놓는 일이므로 파멸은 곧 작가의 인생은 나락이다. 지도는 지도地圖가 아니라 지도指導에 더 가깝다는 사실도 여기에 명기한다. 우리는 흰 젖을 버리고 지상의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흰 젖은 백지를 상징하며 지상의 음식은 시 객체의 또 다른 표현이다. 문밖으로 내쫓긴 달이 짖으면 나는 어쩐지 개가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나는 달이다. 달로 이미 성공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발등에 흰 눈을 덮으며 사냥하지 않고 사냥당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발등은 발등發登으로 발하고 오르는 시점에 오로지 깨끗한 흰 눈만 덮는다. 아무것도 없는 맹한 객체다. 무화과 숲에서 썩지 않은 우리가 발견될 수 있을까? 묻는다. 우리를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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