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간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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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
=전동균
내가 저 젖은 나뭇가지였을 때
폭설의 겨울을 견디어낸, 뒤엉킨 잡목가지 중 하나였을 때
오늘처럼
물병을 든 사람 하나 지나다가 문득 멈추어 섰지
저녁엔 뭘 먹지? 하는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다가
또 한 사람이 무덤 앞에서
우두커니 산 아래 마을을 바라보는 것을 몰래 지켜보다가
오줌발 길게 풀어내고는 빠르게 걸어갔지 그 뒤엔
흙들이, 본디 말이 없는
흙들의 밤이 두리번두리번 몰려왔지
점점 깊어지는 숲속 어딘가
숨어서 반짝이는 살얼음 같은
삶을 마중하듯이
소리 높여 어치는 울고
붉은 머리 새끼 어치는 휘파람소리로 따라 울고
문학동네시인선 216 전동균 시집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 068p
얼띤 드립 한 잔
천지간, 다른 말로 하면 지금 사는 현 세상이다. 천양지간天壤之間이라고도 한다. 양壤은 흙덩이다. 양壤자는 ‘흙덩어리’나 ‘땅’, ‘경작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양壤자는 土(흙 토)자와 襄(도울 양)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양襄자는 장례식을 치르며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양壤자는 경작이 가능한 비옥한 땅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다. 그래서 壤자에서 말하는 ‘흙덩어리’라는 것은 경작할 수 있는 부드러운 흙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는 땅 지地자를 대신해 흙덩이 양壤으로 푼 셈이다. 시는 총 세 단락으로 이루는데 첫 단락은 단순 나뭇가지로만 보인다. 이때는 뒤엉킨 잡목 가지에 불과했다. 시인의 어린 시절이겠다. 두 번째 단락은 성인으로서 바라보는 세계관이다. 지금처럼 물병 든 사람이 지나다가 바라보는 일은 삶의 관조다. 산 아랫마을을 바라보는 행위 이는 성찰이다. 오줌발, 吾+zoom+發이겠다. 나를 비춰 내가 원하는 사물에 좀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하나의 촬영기법으로 더욱 뿜어져 나오는 감정 같은 게 보인다. 그다음에 흙의 역할만 남았다. 마치 씨앗을 오래 품으며 다음의 봄을 기대하듯이 그건 다음에 오는 삶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삶을 잇게 한다. 세 번째 단락은 어치다. 어치는 까마귓과 새다. 어치御齒는 임금의 이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완벽한 하나의 세계관을 그린다. 어치와 붉은 머리 새끼 어치는 속성이 같다. 하나가 지면의 새라고 친다면 다른 하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자아겠다. 거울을 바라보고 선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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