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간, 어디에선가 =박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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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어디에선가
=박승민
안녕,
지구인의 모습으로는 다들 마지막이야
죽은 사람들은 녹거나 흐르거나 새털구름으로 떠오르겠지
그렇다고 이 우주를 영영 떠나는 건 아니야
생각, 이라는 것도 아주 없어지진 않아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건 확실해
보이지 않는 조각들이 모여 ‘내’가 되었듯
다음에는 버섯 지붕 밑의 붉은 기둥이 될 수도 있어
죽는다는 건 다른 것들과 합쳐지는 거야
새로운 형태가 되는 거야
꼭 ‘인간’만 되라는 법이 어디에 있니?
그러고 보니 안녕, 하는 작별은 첫 만남의 인사였네
우리는 ‘그 무엇’과 왈칵 붙어버릴 테니깐
난 우주의 초록빛 파장으로 번지는 게 다음 행선지야
창비시선 508 박승민 시집 해는 요즘도 아침에 뜨겠죠11p
얼띤 드립 한 잔
지구에 태어난 것은 정말 행운이다. 지구에 태어난 것은 이 우주의 역사를 두고 최악이다. 그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지구는 현재의 ‘나’를 이룬 곳이며 현재의 마지막 ‘삶’이라는 것 그러니까 죽음 뒤에는 또 무엇으로 환생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무엇으로 바뀌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멧돼지나 산양 정도는 씹지도 않고 그냥 삼켜버리는 코모도, 코모도의 위에서 그들은 죽음을 맞는다. 코모도와 합체를 이룬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평생 얼마나 많은 고기를 먹을까? 어느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인간 수명 80세로 정하고 계산한 결과 약 7,000마리가 넘는다고 발표했다. 소가 11마리, 돼지 27마리, 닭은 2,400마리, 생선은 약 4,500마리 칠면조 80마리 양고기는 30마리가량이다. 이외 토끼, 오리, 거위, 염소, 새우, 오징어를 포함하면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러고도 인간의 시신은 불태워지는 게 일반적이다. 북방민족은 조장이라는 풍속도 있지만, 이외 지역은 거의 화장이다. 사실, 아무것도 헌신하는 것 없이 지구에 다시 묻는 꼴이다. 고상한 문자를 쓰고 문자 놀이에 헌신하고 마음을 살핀다며 영혼을 달래는 일, 만약 신이 있다면 뭐라고 할까! 그러므로 좀 더 풍족한 사회를 이룰수록 동물과 더 가까워지는가, 그것도 일부 개나 고양이, 그리고 몇몇 애완용으로 가능한 것에 한정한다. 고기를 먹지 말자 뭐 이런 것이 아니다. 죽은 이후의 삶, 세월은 더할수록 몸은 더 곤하고 삶에 대한 미련도 없겠지만, 그 무엇에 대한 준비는 사실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무언가 바뀌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거저 구름이었다가 한차례 비였다가 땅에 부딪는 뇌진탕을 즐기면서 또 흘러가다가 그 흐름을 즐겼다면 어떤 열기로 증발한다든지 어떤 냉기에 얼어 있다든지 그리고 수만 년 수억 년 그렇게 흐름을 즐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무상무념의 경지, 우주와 일체 한다. 아득하다. 참으로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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