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꿈꾸며 =조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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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꿈꾸며
=조연호
더러운 싸전 골목길로 비둘기들이 흙먼지처럼 내려온다. 아이들처럼 손에 흙을 묻히고 말없이 놀던, 할아버지의 치매는 겨울나무처럼 깡마르고 적요로웠다. 열린 문 뒤쪽이 싸한 박하사탕을 물고 보조개 가진 여자애처럼 웃고 있었다. 어미 밖으로 바글바글 몰려나오는 빨간 거미 새끼들이 황혼보다 붉고 아름다웠다. 풀들에 의지해서 소들이, 소들에 의지해서 사람들이 살아간다. 겨울잠이 몽당연필처럼 짧아지고, 깊은 겨울잠 속에서 찬피동물들은 푸른 물결보다 싱싱했을 것이다. 가끔씩 이 지리멸렬한 끈 놓친 풍선처럼 부풀며 하늘로 날아올라 가뭇없이 터져버리곤 했다. 누군가 강 저편으로 외롭게 돌 던졌고, 항상 돌은 더 아프고 더 외로운 쪽으로만 날아갔다. 어떤 이가 몸속에 깊은 웅덩이를 파고 목마름을 담는다. 식물에게 사주(四柱)가 없는 것이 슬펐다.
문학동네포에지 016 조연호 시집 죽음에 이르는 계절 19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 ‘불을 꿈꾸며’ 불은 봄날에 대한 희망이겠다. 인식은 그다음 문제겠지만, 라이타 부싯돌처럼 금시 꺼져버리고 말, 바다는 멀고도 먼 항구다. 더러운 싸전 골목길로 비둘기들이 흙먼지처럼 내려온다. 싸전은 쌀과 곡식을 파는 가게다. 싸전과 비둘기는 구체를 상징한다. 그 주변을 맴도는 시 객체의 묘사다. 아이들처럼 손에 흙을 묻히고 말없이 놀던, 할아버지의 치매는 겨울나무처럼 깡마르고 적요로웠다. 아이와 할아버지는 대조이다. 아이가 바닥에 놓인 자를 상징한다면 할아버지는 그 바닥을 바라보며 꿈꾸는 자다. 열린 문 뒤쪽이 싸한 박하사탕을 물고 보조개 가진 여자애처럼 웃고 있었다. 박하사탕 시어 한 자씩 감상해 볼 일이며 보조개 또한 보조+개로 감상해 볼 일이다. 서로 대비가 된다. 어미 밖으로 바글바글 몰려나오는 빨간 거미 새끼들이 황혼보다 붉고 아름다웠다. 바글바글 하나의 부사지만, 시적 장치로 꽤 괜찮은 어감을 갖는다. 빨간 거미 새끼, 홍조가 저녁놀처럼 지나간다. 풀들에 의지해서 소들이, 소들에 의지해서 사람들이 살아간다. 풀은 식물의 대표로 낙서의 일종으로 본다면 그것을 뜯어먹고 분석하는 일은 소다. 상소에 우리는 긴장하듯이 죽음의 예견이기도 하다. 겨울잠이 몽당연필처럼 짧아지고, 깊은 겨울잠 속에서 찬피동물들은 푸른 물결보다 싱싱했을 것이다. 찬피동물은 다른 말로 하면 변온동물이다. 체온조절 못 하는 바깥 온도에 따라 변하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시의 상징이자 죽음의 대변이다. 가끔 이 지리멸렬한 끈 놓친 풍선처럼 부풀며 하늘로 날아올라 가뭇없이 터져버리곤 했다. 끈 놓친 풍선, 말풍선으로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고 갈피를 못 잡는 상황을 묘사한다. 누군가 강 저편으로 외롭게 돌 던졌고, 항상 돌은 더 아프고 더 외로운 쪽으로만 날아갔다. 강은 하나의 기준이다. 피안과 사바세계에 대한 경계다. 돌은 시의 고체성이다. 어떤 이가 몸속에 깊은 웅덩이를 파고 목마름을 담는다. 시의 행로다. 식물에게 사주(四柱)가 없는 것이 슬펐다. 상대에게 심은 것으로 그것을 통칭한다면 식물이겠다. 사주가 없는 건 당연지사다. 읽고 나면 죽음임으로 사장되든지 변이가 되었든지 둘 중 하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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