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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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
=이재훈
열리는 밤이었다.
날개가 부서진 잠자리를 개미가 끌고 가는 밤이었다.
아름다운 배필이 있었나요. 저는 죄를 지었을 뿐입니다. 하늘은 저주를 내리고 흙은 침묵을 줍니다. 자꾸 혼자 있게 됩니다. 영험한 귀신이 늘 주위에 있습니다. 관계는 끊어집니다. 밥을 먹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숲은 가장 평온하면서 가장 위험하죠. 차가운 바람이 겨드랑이를 훑고 지나갑니다. 구렁이가 혀를 내밀고 귓바퀴에 타액을 남깁니다.
달이 가득찬 밤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손자에게 가장 더러운 것을 물려줍니다. 군중은 사람들만 보았습니다. 솟대가 불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달이 저물어 갈 즈음 아이를 훔쳤습니다. 오랫동안 가시덤불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신발과 노란 모자를 만들었습니다. 전쟁인가요. 이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저기 보세요. 밤은 불타고, 개미들은 바쁘게 움직입니다. 현대인들의 합창이 여기저기 들립니다.
문학동네시인선 166 이재훈 시집 생물학적인 눈물 051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로 사용한 ‘외설’은 외설猥褻이 아니라 외설外說로 닿는다. 지금은 열린 밤이다. 시 객체와의 만남을 묘사했다. 날개가 부서진 잠자리를 개미가 끌고 가는 밤이었다. ‘날개가 부서진 잠자리’는 시 주체를 묘사한 문구며 ‘개미가 끌고 가는 밤’은 시 객체를 묘사한 문구다. 날개와 개미가 대조적이며 잠자리와 밤이 대비된다. 아름다운 배필이 있었나요. 저는 죄를 지었을 뿐입니다. 배필은 짝으로 시 객체를 은유한다. 죄는 남김없이 모두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죄다’는 ‘남김없이’라는 뜻으로 부사다. 하늘은 저주를 내리고 흙은 침묵을 줍니다. 여기서도 뚜렷한 대조가 보인다. 하늘과 흙 그리고 저주와 침묵으로 뚜렷한 시 주체와 객체에 대한 묘사다. 자꾸 혼자 있게 됩니다. 시의 특성이다. 영험한 귀신이 늘 주위에 있습니다. 지금처럼 열린 봄이면 늘 맴도는 일이기도 하다. 시의 역할이다. 관계는 끊어집니다. 자와 자의 연결고리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손자의 관계에서 떼어낸 것은 영험한 신적 존재에 있다. 아버지는 나를 낳은, 즉 인식의 매개체로 아들은 그 밑에 놓인 자로 손자는 새싹(孫)이거나 덜어내는(損) 거로 공중에 승화한 자字다. 밥을 먹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밥과 숲이 대조다. 밥이 구체면 숲은 모서리다. 숲은 가장 평온하면서 가장 위험하죠. 시 객체의 특성을 묘사한다. 차가운 바람이 겨드랑이를 훑고 지나갑니다. 차가운 바람과 겨드랑이가 대조적이다. 구렁이가 혀를 내밀고 귓바퀴에 타액을 남깁니다. 귓바퀴는 시 주체를 제유하는 시어로 물론 겉귀지만 둥근 바퀴처럼 구르는 역할까지 묘사한다. 다음 단락도 이처럼 바닥에 대한 묘사와 바닥 위를 꾸미는 자들의 행각을 그린다. 마치 증발한 수증기처럼 하늘로 이행이다. 그 이행의 역할은 개미가 한다. 그러므로 개미는 검정을 상징하며 개미집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여기저기 합창으로 현대인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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