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장석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대낮
=장석주
취학아동들이 등교한 뒤
라디오 진행자는 오늘의 날씨를 전한다.
하늘엔 구름 약간, 비 예보는 없었다.
주가의 급락이나 급등은 없고
현직 대통령의 지지도는 미미하게 반등한다.
전쟁이 끝난 지 칠십 년이 지났다.
튤립꽃이 피고, 재개발 지역의 철거는 끝난다.
유기견들이 야산으로 올라간다.
이웃집은 별일이 없는 듯 조용하고
한낮엔 탕약 달이는 냄새가 난다.
그림자들이 사라진 이상한 대낮,
개와 사람에게 그림자가 없다면 이상할 것이다.
당신과 사소한 이유로 다툰다.
커피 한 잔 정도의 사소함이 문제를 키운다.
동네 상가를 지나가다 가방을 산다.
토마토에서는 붉은 맛이 나지 않는다.
입속엔 말을 잃은 혀가 말려 있다.
문학동네시인선 208 장석주 시집 꿈속에서 우는 사람 026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 ‘대낮’은 열려 있는 상태다. 환하다. 그러나 뭔가 맞지 않는다. 이 시에서는 주로 동사에 눈이 자꾸 머물게 한다. 가령, 등교한다. 전한다. 없었다. 급락이나 급등은 없다. 지지도는 미미하나 반등한다. 칠십 년이 지났다. 피고 끝난다. 올라간다. 조용하다. 냄새가 난다. 이상하다. 다툰다. 키운다. 산다. 나지 않는다. 말려 있다. 시 주체를 꾸미는 시 객체의 묘사다. 취학 아동들이 등교한 것처럼 자는 대낮이며 라디오 진행자는 속을 비유하는 하나의 시적 장치다. 하늘엔 구름 약간, 비 예보는 없다. 그러니까 맑지는 못하나 그릇된 것도, 사실 없는 것이다. 주가는 주식시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주인의 가치, 시적 주체의 마음을 상징한다. 그것이 급락하거나 급등은 없으니 아직 맹한 어떤 것이 있음을 시사한다. 현직 대통령의 지지도는 미미하게 반등한다. 대통령도 시 주체를 상징한 말로 마치 큰(大) 감옥(囹)에서 바깥과 내통하려는 욕구 같은 게 보인다. 그것은 반등한다는 동사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전쟁이 끝난 지 칠십 년이 지났다. 전쟁, 피안과 사바세계의 경계에서 나고 죽음을 비유한다면 칠십 년은 시인의 나이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튤립꽃이 피고, 재개발 지역의 철거는 끝난다. 튤립에서 tool + 立으로 닿는 이유는 그 어떤 것이든 두드리고 때리고 뽑고 다지는 그 과정을 시작의 활동이라면 그렇게 과한 얘기는 아닐 듯하고 재개발은 퇴고의 과정을 묘사했다. 그러고 보면, 툴의 도구는 망치겠다. 유기견遺棄犬, 주인이 돌보지 않고 버려진 개, 야산으로 가고 그러니까 어딘지는 모르지만, 가기는 갔을 테고 이웃집은 별일이 없는 듯 조용하다. 아직도 아무런 인식이 없음을 묘사한다. 한낮엔 탕약 달이는 냄새가 난다. 탕약에서 끓일 탕湯 + 묶거나約, 약이거나藥, 같거나若, 뛰거나躍, 다스리거나略, 노략질이든掠, 하여튼 그러한 몸짓 같은 게 보이는 것으로 심히 들춰본다. 개와 사람에게 그림자가 없다면 이상할 것이다. 아직도 맹하다. 볕을 봤다면 뭐를 남겨야 할 텐데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소한 이유에서 사소 극히 개인적 상소와 같은 자아의 의중과 싸우는 일, 그 사소+咸이자 函이다. 문제는 더욱 커진다. 동네는 자들의 모임을 상징하며 가방은 마음을 상징한다. 마음을 사서 보고 마음을 놓는 일 시인의 일이다. 토마토에서 데칼코마니 현상을 보며 붉다는 것에서 열정과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맛은 나지 않는다. 죽었으니까! 입속엔 말을 잃은 혀가 말려 있다. 이쪽도 저쪽도 모두 꼬들꼬들 만 혀가 굳어 있다. 시의 고체성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