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풀이 =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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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풀이
=김 안
내 질문들은 자꾸만 어리석어지고, 어리석어지니 입을 틀어막고,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선의와 이토록 불가해한 다정함이 가득하니, 나는 그저 진부함과 유치함 속에만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그 아래 개미들의 긴긴 행렬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서도, 개미들이 지고 가는 잠자리 대가리와 몸뚱이를 보면서도, 그것들이 한 무리가 되어 들어가는 구멍의 어둠을 내내 쳐다보면서도, 도통 마음에는 뿔도 자라나지 않고 근육도 붙지 않으니, 이 다정한 세상에서 암장당하는 것을 이제 내 몸에 없는 것들이라 치부하고 돌아서자. 내겐 이제 아무런 이야기도 남아 있지 않으니, 이제는 마음껏 세상과 상관하자. 오늘 밤 기름진 테이블에 둥글게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고 곱창을 응시하고 있는, 내 육신과 닮은 늘어진 몸뚱이들은, 드잡이하지 않을 만큼만 시끄럽고, 경멸하고, 춤추고, 사랑하는구나, 자글자글 흘러나오는 곱처럼, 기름지고 누런, 한껏 볼만한 영혼으로 차오르는구나.
문학과지성 시인선597 김 안 시집 Mazeppa 22p
얼띤 드립 한 잔
아무래도 시인은 막창집 운영하는 사장처럼 보인다. 시인께서 사용한 시어를 보면 대충 그렇다. 뒤풀이는 어떤 일이나 모임을 끝내고 서로 여흥을 즐기는 일이다. 그것처럼 현실에서도 이 우울한 사람과 함께 한 이가 있었다면 그 뒷면에 자들의 모임에서도 함께 하는 뿔 즉 horn, 혼이라도 남아야 할 터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개미와 같은 깨알과도 같은 자를 몰며 자치기 해보지만, 여간 풀밭은 멀기만 하다. 그러나, 다정함은 통하는 것도 있어 긴긴 행렬은 하루의 무장을 해제하며 바닥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므로 자는 성심으로 임해 시국을 형성하니 이 아니 좋을세라, 그러므로 암장당한 주옥과도 같은 시, 발표하게 되는 일로 성사를 이루니 이젠 외로운 마음도 한껏 풀을 이루고 비를 맞을지어다. 오늘 밤 비로소 테이블을 열고 둥글게 머리를 맞대고 곱창까지 들여다보는 일, 참으로 세상은 오래 살고 보아야 할 일, 뚱뚱이도 있고 홀쭉이도 있고 안경을 낀 애가 있는가 하면 다리를 절기도 하고 손목이 간들거리는 것까지 비틀거리는 몸짓은 죔쇠를 쥐며 놓아주지 않는 것까지 가관은 따로 없을 것이다. 자글자글 흘러나오는 이 곱, 우째 할꼬, 기름지고 누런 황금의 밭에서 이 볼만한 고적은 따로 없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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