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면 / 김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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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면 / 김예강
초면에 물컵을 떨어뜨렸다 들고 있던 물컵의 작약이 흉터를 예감하며 저편 작약의 없는 손을 잡으려 한다 빗물이 창문에 남겨진 어제의 눈동자를 조용히 지우며 간다 이럴 땐 어제의 내부는 겹꽃 같아서 영혼이 어디론가 자꾸 숨는다 싸늘한 골목의 등은 밤사이 피를 데우려다 아침을 맞이하곤 한다 골목 안 담장에 길없음이라 쓴다 갈팡질팡하던 아침이 등이 휜 고양이가 곧 얇고 유연한 새 골목을 끌고 오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어디선가 들은 희미한 노래가 등 뒤에서 들린다 조금 자란 손톱을 들여다보다 손금이 어디까지 흘렸는지 생각한다 손바닥은 번개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내 안의 열에 내가 데인 자국이다 우리는 초면인데 애인이라 한다 우리는 초면인데 적이라 한다 나는 꿈속인데 느닷없이 사랑하는 말을 한다 고양이 울음이 밤을 서성이다 창문을 두드리고 간다 초승달 속에 오래전 내가 서성이던 골목
鵲巢感想文
시제가 초면이다. 초면은 무엇인가? 초면初面인가 초면炒麵인가, 이것도 아니면 초면草綿인가 어쩌면 초면焦面일 수도 있겠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초면草面은 어떤가? 초면에 물컵을 떨어뜨렸으니 초면은 젖었다. 시적 계기다.
물컵의 작약이 흉터를 예감하며 저편 작약의 없는 손을 잡으려 한다, 작약은 작약炸藥이 맞을 것 같다. 터질 것 같다는 어떤 마음의 심적인 시어다. 물컵의 작약은 행위자고 저편 작약의 없는 손은 미치는 대상이다. 시인이 시를 읽는 행위나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로 보는 것이 맞다.
빗물이 창문에 남겨진 어제의 눈동자를 조용히 지우며 간다, 골목길 같은 추억, 그리 깊지 않은 어제의 일이다. 시인의 마음을 잘 나타내 보인 심적 묘사다. 이럴 땐 어제의 내부는 겹꽃 같아서 영혼이 어디론가 자꾸 숨는다, 시인의 마음은 겹꽃처럼 어제의 일을 숨기고 싶다.
싸늘한 골목의 등은 밤사이 피를 데우려다 아침을 맞이하곤 한다, 싸늘한 골목길 같은 화자며 나를 기댈 수 있는 필묵(등)은 밤새 피를 흘렸다. 그러니까 열정을 쏟으며 아침을 맞았다. 골목 안 담장에 길 없음이라 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좁은 머리는 길이 없다. 만들 수 없다.
갈팡질팡하던 아침이 등이 휜 고양이가 곧 얇고 유연한 새 골목을 끌고 오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갈팡질팡하던 아침이, 주어부다. 아침은 시인을 제유한 시어며 시인의 마음을 묘사한 시구다. 등이 휜 고양이는 모태가 되는 문장이며 주어부다. 곧 얇고 유연한 새 골목을 끌고 오는 것을, 그러니까 모태에서 파생한 문장이다. 이것을 아침에 시인은 본다.
어디선가 들은 희미한 노래가 등 뒤에서 들린다 조금 자란 손톱을 들여다보다 손금이 어디까지 흘렸는지 생각한다, 손톱은 시 결정체다. 손금처럼 잡은 글이며 손금처럼 복잡하게 얽힌 시며 작품은 되는지 확인한다.
손바닥은 번개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내 안의 열에 내가 데인 자국이다, 번개의 발자국이라는 표현이 재밌다. 이는 내 안의 열에 내가 데인 자국이라 했다. 번뜩이는 사색을 놓치지 않고 필사한 시인의 노력이 보인다. 우리는 초면인데 애인이라 한다 우리는 초면인데 적이라 한다, 여기서 초면은 초면初面이다. 시제는 좀 다른 성질이다. 시는 모두 시인만이 읽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속에는 애인 같이 글을 읽고 마음을 잡는 이가 있고 비평가처럼 시인의 평을 두둔하는 이도 있다. 또 초면은 세상 한 자락을 묘사하며 그 양면성을 얘기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꿈속인데 느닷없이 사랑하는 말을 한다 고양이 울음이 밤을 서성이다 창문을 두드리고 간다 초승달 속에 오래전 내가 서성이던 골목, 시인의 꿈을 실현한 한 대목이다. 고양이 울음 같은 시와 이 시를 통해 밤새 서성이며 내 마음의 창을 두드렸던 시인, 더뎌 창은 열리고 초승달보다 나은 둥근 달을 그렸으니 꿈은 이루어진 셈이다.
처음 대하는 얼굴이 초면이다. 사람은 첫인상에 그 사람의 인품을 어느 정도 파악한다. 그 사람의 자태와 말과 몸짓에 무엇보다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상대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몇 년을 살았던 내가 살아온 인생이 고스란히 묻은 곳이 얼굴이다. 한평생 살아가는 것이 어느 사람이든 별다른 게 있겠는가! 하지만, 별다른 것이 또 인생이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의지를 굳건히 하고 자기 관리를 뚜렷이 한 이는 반듯한 삶을 추구한다. 의지를 굳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여러 사람을 통해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배우려고 하는 자세만큼 세상을 똑바로 보는 것도 실은 없다. 세상에 바르게 서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으려만 책 한 권 읽으려는 사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여유가 없기에 여유를 만드는 일이라는 허무맹랑한 말인 것 같아도 우리는 모두 영혼을 가졌기에 마음의 안정만큼 모든 일보다 더 우선시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올해 정유년도 이제 한 달이 다 갔다. 나이 60이 넘지 않은 경제활동영역에 있는 사람은 매년 다가오는 해는 모두 초면이자 초년이다. 정유년은 세종대왕 탄생의 해이기도 하며 대한제국 성립의 해다. 이순신의 정유재란을 승전으로 이끈 4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붉은 열정을 담아 새벽처럼 울부짖는 닭, 한 해 12개의 바둑돌이라면 이미 한 개의 돌을 세상에다가 놓은 셈이다. 우리의 붉은 열정을 담은 정유년, 한 해 어떻게 이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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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김예강 2005년 <시와 사상> 신인상 등단
초면에 물컵을 떨어뜨렸다 들고 있던 물컵의 작약이 흉터를 예감하며 저편 작약의 없는 손을 잡으려 한다 빗물이 창문에 남겨진 어제의 눈동자를 조용히 지우며 간다 이럴 땐 어제의 내부는 겹꽃 같아서 영혼이 어디론가 자꾸 숨는다 싸늘한 골목의 등은 밤사이 피를 데우려다 아침을 맞이하곤 한다 골목 안 담장에 길없음이라 쓴다 갈팡질팡하던 아침이 등이 휜 고양이가 곧 얇고 유연한 새 골목을 끌고 오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어디선가 들은 희미한 노래가 등 뒤에서 들린다 조금 자란 손톱을 들여다보다 손금이 어디까지 흘렸는지 생각한다 손바닥은 번개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내 안의 열에 내가 데인 자국이다 우리는 초면인데 애인이라 한다 우리는 초면인데 적이라 한다 나는 꿈속인데 느닷없이 사랑하는 말을 한다 고양이 울음이 밤을 서성이다 창문을 두드리고 간다 초승달 속에 오래전 내가 서성이던 골목
鵲巢感想文
시제가 초면이다. 초면은 무엇인가? 초면初面인가 초면炒麵인가, 이것도 아니면 초면草綿인가 어쩌면 초면焦面일 수도 있겠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초면草面은 어떤가? 초면에 물컵을 떨어뜨렸으니 초면은 젖었다. 시적 계기다.
물컵의 작약이 흉터를 예감하며 저편 작약의 없는 손을 잡으려 한다, 작약은 작약炸藥이 맞을 것 같다. 터질 것 같다는 어떤 마음의 심적인 시어다. 물컵의 작약은 행위자고 저편 작약의 없는 손은 미치는 대상이다. 시인이 시를 읽는 행위나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로 보는 것이 맞다.
빗물이 창문에 남겨진 어제의 눈동자를 조용히 지우며 간다, 골목길 같은 추억, 그리 깊지 않은 어제의 일이다. 시인의 마음을 잘 나타내 보인 심적 묘사다. 이럴 땐 어제의 내부는 겹꽃 같아서 영혼이 어디론가 자꾸 숨는다, 시인의 마음은 겹꽃처럼 어제의 일을 숨기고 싶다.
싸늘한 골목의 등은 밤사이 피를 데우려다 아침을 맞이하곤 한다, 싸늘한 골목길 같은 화자며 나를 기댈 수 있는 필묵(등)은 밤새 피를 흘렸다. 그러니까 열정을 쏟으며 아침을 맞았다. 골목 안 담장에 길 없음이라 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좁은 머리는 길이 없다. 만들 수 없다.
갈팡질팡하던 아침이 등이 휜 고양이가 곧 얇고 유연한 새 골목을 끌고 오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갈팡질팡하던 아침이, 주어부다. 아침은 시인을 제유한 시어며 시인의 마음을 묘사한 시구다. 등이 휜 고양이는 모태가 되는 문장이며 주어부다. 곧 얇고 유연한 새 골목을 끌고 오는 것을, 그러니까 모태에서 파생한 문장이다. 이것을 아침에 시인은 본다.
어디선가 들은 희미한 노래가 등 뒤에서 들린다 조금 자란 손톱을 들여다보다 손금이 어디까지 흘렸는지 생각한다, 손톱은 시 결정체다. 손금처럼 잡은 글이며 손금처럼 복잡하게 얽힌 시며 작품은 되는지 확인한다.
손바닥은 번개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내 안의 열에 내가 데인 자국이다, 번개의 발자국이라는 표현이 재밌다. 이는 내 안의 열에 내가 데인 자국이라 했다. 번뜩이는 사색을 놓치지 않고 필사한 시인의 노력이 보인다. 우리는 초면인데 애인이라 한다 우리는 초면인데 적이라 한다, 여기서 초면은 초면初面이다. 시제는 좀 다른 성질이다. 시는 모두 시인만이 읽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속에는 애인 같이 글을 읽고 마음을 잡는 이가 있고 비평가처럼 시인의 평을 두둔하는 이도 있다. 또 초면은 세상 한 자락을 묘사하며 그 양면성을 얘기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꿈속인데 느닷없이 사랑하는 말을 한다 고양이 울음이 밤을 서성이다 창문을 두드리고 간다 초승달 속에 오래전 내가 서성이던 골목, 시인의 꿈을 실현한 한 대목이다. 고양이 울음 같은 시와 이 시를 통해 밤새 서성이며 내 마음의 창을 두드렸던 시인, 더뎌 창은 열리고 초승달보다 나은 둥근 달을 그렸으니 꿈은 이루어진 셈이다.
처음 대하는 얼굴이 초면이다. 사람은 첫인상에 그 사람의 인품을 어느 정도 파악한다. 그 사람의 자태와 말과 몸짓에 무엇보다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상대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몇 년을 살았던 내가 살아온 인생이 고스란히 묻은 곳이 얼굴이다. 한평생 살아가는 것이 어느 사람이든 별다른 게 있겠는가! 하지만, 별다른 것이 또 인생이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의지를 굳건히 하고 자기 관리를 뚜렷이 한 이는 반듯한 삶을 추구한다. 의지를 굳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여러 사람을 통해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배우려고 하는 자세만큼 세상을 똑바로 보는 것도 실은 없다. 세상에 바르게 서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으려만 책 한 권 읽으려는 사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여유가 없기에 여유를 만드는 일이라는 허무맹랑한 말인 것 같아도 우리는 모두 영혼을 가졌기에 마음의 안정만큼 모든 일보다 더 우선시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올해 정유년도 이제 한 달이 다 갔다. 나이 60이 넘지 않은 경제활동영역에 있는 사람은 매년 다가오는 해는 모두 초면이자 초년이다. 정유년은 세종대왕 탄생의 해이기도 하며 대한제국 성립의 해다. 이순신의 정유재란을 승전으로 이끈 4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붉은 열정을 담아 새벽처럼 울부짖는 닭, 한 해 12개의 바둑돌이라면 이미 한 개의 돌을 세상에다가 놓은 셈이다. 우리의 붉은 열정을 담은 정유년, 한 해 어떻게 이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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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김예강 2005년 <시와 사상>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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