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뒷모습 =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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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뒷모습
=조용미
백 년 전 그림 속에 피가 고이듯 익숙한 모습이 있다 나의 지문 같은 침묵과 공간과 어둠 속의 빛을 생을 다해 읽어낸 사람
오래전 그의 고독을 내가 숨 쉬었는데
그의 시선이 나의 시선처럼 겹쳐 있는데 나는 뒷모습으로 서 있고 동시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자이고
공기의 질감을 한 올 한 올 낱낱이 감각하는, 창으로 들어오는 낮고 서늘한 빛이고
빛과 그늘이 솜처럼 뭉쳐져 있는 정적과 고요라면, 흰색과 검은색의 짙음과 옅음이라면
수없이 많은 내가 수없이 많은 곳에서 당신의 뒷모습을 어루만진 기억을 아직도 살아내고 있고, 있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602 조용미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 58p
얼띤感想文
백 년 전 나의 아버지의 할아버지 증조부 아니 고조부까지는 오를 것이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지 기억하지만, 그 윗대의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지는 모른다. 그 뒷모습에 대해서 고조부까지는 아주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부족할 만큼 생활은 궁핍하지는 않았다. 할아버지 대에 병환으로 가산은 탕진되었고 625동란으로 대대로 살았던 세곡을 떠나 피난하여 살게 된 칠곡 어느 골짜기에서 자의 삶을 그려본다. 백 년 후, 나의 증손자 아니 손이 없을지도 모른다. 혹여 있다고 해도 뒷모습에 대한 시선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인간의 영혼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거 같다. 삶의 유한성에 대해서 못다 한 깨달음을 심어주기 위한 배려겠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지구에다가 사과 한 그루 심는 일, 여느 시인처럼 딸아이와 꽃을 꺾어 와 찰흙 속에 단단히 심는 일, 그건 내일을 위함이 아니라 현재를 더욱더 냉철하게 보기 위함이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오늘, 마치 몇 시간 남지 않은 삶을 나 스스로 꽉꽉 채우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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