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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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장석주
춘분인데 눈발이 날리네요. 생각은 눈발보다 더 많이 흩날려요. 수정란의 착상이 그렇듯이 생각이 수태하는 순간은 모호해요. 혼돈 속에서 생각의 지평선은 더 넓어집니다. 자는 데 여러 베개가 필요 없다는 생각, 인생 별거 아니라는 생각, 눈발 붐비듯 머릿속엔 생각이 붐벼요. 생각함이 돛대라면 당신은 돛을 미는 바람이겠지요. 늘 길 없는 길로 끌고 가는 건 당시이에요. 우리는 생각의 금수로 살다 죽겠지요. 이제 생각 대신에 춤을 춰요. 고양이로 환생한 구루들, 그렇지만 우리는 새의 종족으로 진화하지는 못해요. 옆구리에 날개가 돋을 수는 없는 일이에요. 직립보행이 우리의 윤리라면 춤은 고요한 자들의 도덕이 되겠지요. 걷고 달리다가 마지막엔 발뒤꿈치에 날개가 돋아 공중으로 도약하는 우리! 우리가 생각을 공중에 파종하는 농부라면 노래를 잊은 가수는 가장 늦게 돌아오는 생각의 방랑자이겠지요. 춘분에는 집안을 청소해요. 아내는 발레 교습소에 가고, 나는 검은 머리에 눈발 뒤집어쓰고 도서관으로 가요. 눈발을 맞으며 남극까지 갈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에요. 계절이 바뀔 무렵엔 뭔가를 상실한 기분이 되지요. 그렇다고 우울증 약 따위는 복용하지 않아요. 불안은 우리의 양식이고, 여기는 극지니까요. 베를린 중앙역 일대에는 긴 비가 내렸어요. 먼바다 어딘가에는 태풍의 씨앗이 자라겠지요. 당신은 새로운 연애에 어려움을 겪고 머지않아 빗속을 걷겠지요. 생각은 우기에 더욱 번성해요. 동물원에서 표범과 눈을 제대로 맞춘 적이 없어요. 지금 몇억 광년 떨어진 자리에서 어떤 우주의 눈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까요.
문학동네시인선 208 장석주 시집 꿈속에서 우는 사람 016-017p
얼띤感想文
시는 독백이다. 아니 독백처럼 풀었지만, 생각에 대한 시가 갖는 해답일 것이다. 생각은 순 우리 말이다. 한자로 변용한다면 사思다. 생각生角이라 할 때 이는 사슴의 뿔이다. 그것도 저절로 빠지기 전 상태다. 뿔처럼 솟아오른 것이 있다면 그건 생각이 아니라 분노이거나 흥분 따위 그 외 감정의 표현으로 다른 무엇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시는 전체적으로 읽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래도 시어 중심으로 읽어본다. 춘분은 24절기의 하나다. 봄이라는 계절에 닿는 시 객체와의 만남이다. 눈발은 雪이 아니라 눈이 하나의 씨앗이라면 발은 발기發起의 원초적인 힘을 다룬다. 시인께서는 생각을 시의 제유했다면 수정란의 착상으로 비유를 들어 만남의 일치를 묘사한다. 수많은 정자에서 하나의 일체감은 시의 인식이다. 그 순간은 모호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애매하며 그만큼 진정한 만남을 이룰 수 있는 길 또한 몇 안 되기에 그렇다. 시만 그럴까, 우리가 겪는 일 또한 그렇다. 내게 맞는 일이 어디 있을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제야 한 자리 제구 마련할 수 있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안 맞는 이 없다고 해서 포기할 일은 아니다. 모든 일에 대해서 말이다. 계속 찾고 방법을 강구하다 보면 어느덧 익숙한 자아를 발견한다. 언제였을까, 커피 강의를 처음할 때였다. 머리에 많이 넣어놓고 강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무대에 오르면 버벅거리며 하나도 떠오르지도 않는다. 물론 지식도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경험은 별다른 공부나 다름이 없다. 수많은 경험이 하나의 표준이 되어가듯이 자아의 길은 언제나 독립적이며 새로움을 창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손 떨려 무엇이 뭔지 잘 되는 일 없이 늘 당한다. 거래의 경험은 되든 안 되든 쌓아나가야 한다. 항상 추세를 잊지 말 것이며 비중조절은 칼같이 했다면 거기서 오는 반하는 것이 분명 보인다면 손절은 필수다. 그러면 성공확률은 꽤 높다. 이외 아래는 그동안 감상문에서 줄곧 다룬 시어들이 많아 생략한다. 발레와 베를린이라는 시어가 있지만 이는 소리 은유다. 동물원과 표범, 표범은 동물이지만 동물원과 대치를 이루기도 하고 두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면 표범은 어떤 한 기준이 된다. 법 범範으로 말이다. 표는 겉이거나 表, 우듬지거나 標 그 외 무엇이 되든 시를 상징한다. 주체든 객체든 읽기 나름이겠다. 생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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