魔力 =윤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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魔力
=윤의섭
아프지 않은데 눈이 온다
슬프지 않은데 꽃을 피우는 蘭도 있다
처연하게 노을 지거나
부른 적 없는데 달이 뜨는 날도 있다
하마터면 마른 낙엽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바람길 따라
간신히 그어진 지방도 깊숙이 사라져 갈 뻔도 했다
보고 싶은데
결코 나타나지 않는 풍경도 있다
풍경 속에 잠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벽에 걸린 거대한 사진 액자를 종일 바라보고 섰다
부서진 기와 조각이 역광을 받아 빛나는
지금은 저 잿빛 갯벌이 추억하고 있을 소금 창고의 잔해가
벽 앞에 서 있는 잔해를 마주 보고 웃는다
멀리서 해연풍이 불어왔다
눈이 오는데 아프지 않다
긴 추억의 시작이다
민음의 시 163 윤의섭 시집 마계 67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로 쓴 ‘魔力’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힘 같은 것이다. 시 주체는 죽음이 있는 곳 피안에 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 어떤 것도 구별할 인식은 사실 없다. 그러나 누가 마치 관 뚜껑을 열듯이 오는 이가 종종 있다. 마치 그것처럼 상상한다. 조용히 자고 있는데 누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것도 없다. 그것도 가족의 일원이 보고 있으면 덜하다. 생판 모르는 이가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다면 얼마나 당황할까! 그러나 그것도 깰 때가 문제지 시 주체는 죽음이라는 것, 그러나 그 속에서 이상한 힘 같은 것을 느낀다면 그건 마력이나 다름이 없겠다. 그러므로 아프지 않은데 눈이 오고 슬프지 않은데 꽃을 피운다. 그 꽃 이름은 蘭이라 이름하였는데 마치 亂처럼 어지럽기만 하다. 그곳은 노을처럼 붉고 달이 있었다. 낙엽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바람길 따라 간신히 그어진 지방도 깊숙이 사라져 갈 뻔도 했다. 여기서 지방은 종이로 만든 신주 지방紙榜이지만 어느 한 방면을 가리키는 지방地方처럼 들린다. 그러니까 시 객체를 지향한다. 보고 싶은데 결코 나타나지 않는 풍경도 있고 풍경 속에 잠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인식을 못 한다. 벽에 걸린 거대한 사진 액자를 종일 바라보고 섰다. 그것은 영정사진이겠다. 삶과 죽음을 뒤바꿔놓는다. 죽은 사람은 산 것처럼 산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이 없는 장이다. 액자 속 사람은 살아 있으나 죽은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 된다. 기와, 지붕을 이는데 쓰는 재료다. 그러나 기와起臥는 일어나거나 눕는 행위다. 기와에 대한 색채도 떠올려보는 것도 좋다. 얹은 위치도 좋다. 지붕이니까! 잿빛 갯벌과 소금 창고는 대조적이다. 잿빛은 일단 검정과 흰색과는 거리가 멀다. 곧 그쪽으로 이전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소금이라는 시어에 어떤 노력과 땀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해연풍은 낮에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이다. 낮은 열린 공간을 대신한다. 눈이 오는데 아프지 않다. 긴 추억의 시작이 될 것 같다. 벌써 빛은 이전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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