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을 끝내지 못한 곳에서 =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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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끝내지 못한 곳에서
=김 안
망각이 용서를 낳는다고 했던가, 그 용서가 영혼을 병들게 만든다고 했던가, 딸아이와 함께 나온 초저녁 산책 길에 본, 죽은 나무 그늘 아래 죽은 잿빛 비둘기와, 죽은 새끼 고양이와, 이미 죽어 있던 것들, 갓 죽은 것들. 울던 딸아이를 달래 그네에 태우고 힘껏 밀다 보면 집집마다 뿌옇게 등 켜지고, 딸아이는 죽은 풍경을 잊고, 그네를 타며 작고 둥근 머리를 치켜들고 제 집이 몇 층인지를 헤아리고, 그렇게 높고 가파르게 적재된 가정들 틈에서 나는 선한 의지와 땅과 몸, 얕고 서글픈 역사, 눈 밖에 있는 자들 등만을 딴에 멋지게만 기억하려 하겠지. 어쩔 수 없는 걸까. 과연 그럴까? 그럴 수밖에........이 문장을 끝내지 못한 곳에서, 이렇게 함께 너와 느릿느릿 춤추다 어리석게 늙어가면 좋겠다만, 나의 무능과 실패로 짠 지옥이 자칫 네게 시작될 것만 같아서, 차마 이 부끄러움 속을 너와 함께 걸을 수 없어서.
문학과지성 시인선597 김 안 시집 Mazeppa 74p
얼띤 드립 한 잔
어떤 사실을 잊어버림, 그건 망각忘却이다. 물체의 모가 진 가장자리 이것도 망각芒角이다. 우리말로 하면 까끄라기다. 외부 세계의 자극을 잘못 지각하거나 없는 자극을 있는 것처럼 생각함. 또는 그런 병적 현상. 착각과 환각으로 나뉘는데 이를 망각妄覺이라 한다. 그 어떤 것도 모두 망각이니 시에서는 크게 관여할 바는 아니다. 모두 부정적으로 닿기에 공통점은 있는 거 같다. 딸아이는 자다. 물론 시인께서 딸아이와 산책 나와 여러 생각하다가 쓴 글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의 일기를 쓰더라도 시로 맞춰야 하는 삶, 시인이다. 죽은 나무 그늘과 잿빛 비둘기는 대조적이다. 시 객체와 시 주체다. 비둘기는 구鳩다. 구에서 오는 동음이의어가 구球로 닿는다. 하나의 구체를 형성한다. 죽은 새끼 고양이와 이미 죽어있던 것들, 갓 죽은 것들 모두 시 객체다. 이를 보며 우는 딸아이는 자로 시 주체가 되겠다. 가정, 물론 피상적으로 읽으면 가정家庭이다. 시의 논리적으로 읽는다면 가정假定일 것이며 그네는 밀고 밀려가고 오고 다시 받아내는 작용과 반작용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역사歷史, 전에도 한 번 쓴 적 있다. 밥 먹은 그 시점을 기록한 사실들 벼 화禾가 둘 그칠 지止로 이룬 글자. 역歷이다. 전쟁은 모두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북아권을 보아도 지금은 평화가 유지된다고 하여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불 보듯 뻔한 미래다. 백제의 원혼을 뿌리로 둔 일본, 옛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만주와 연해주는, 좀 더 오르면 고조선과 요하문명의 근간인 요동과 요서는. 힘이 없으면 복속되거나 멸망을 초래할 것이다. 저 북의 행로는 숨 가쁜 역사의 아침에 크나큰 오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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