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가 장딴지를 거웃처럼 감아 올랐을 때
사윈 햇살들이 풀무치들을 밟고 있었을 때
사뭇 그런 예감이 있었다
무구한 시간들이 주춤대는 것을 보았을 때
에푸수수한 머리칼로 나대고 싶었을 때
나침반을 버리고 길 잃으려 했을 때
희망조차 결별을 속삭였을 때
잠든 너의 아름다움을 묻지 않았다
베돌던 바람의 뒤통수를 보았을 때
개펄의 해산물 같은 약속을 남겼을 때
시린 잎사귀들을 보았을 때
떠나는 것들아 낯붉히지 말라 했었다
멈추지 말고 총총 흩어지라고
소멸의 강줄기로 사라지라고
벗겨진 어둠을 맛보리라고
상사(想思)에 죽어갈 나무가 될지라도
권태로운 빛의 알갱이들 한 계단씩 이동하고 나면
시골 정류장 같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어둠 속에 어둠 속에
보석들의 광채를 길이 담아 둔
밤과 같은 당신에게
춘천 출생 백석대학교 신학과 졸업 월간 <신춘문예> "수필부문" 및 "시부문" 신인상 受賞 월간 신춘문예 동인 , 신춘문예작가협회 회원, 월간 <문학바탕> 회원 시마을 "커피예찬" 과 " 아름다운 포옹" 수필 우수작 선정 시집으로, <그가 잠든 몸을 깨웠네> 2010년 레터북刊 시마을 작품選集 <자반고등어 굽는 저녁>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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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과거시재(過去時在)의 그 어느 때를 빌어 엮어가는,
가을 바람의 의미망(意味網)
그 의미망이 '당신'으로 표상(表象)되는 존재와의
'꿈꾸는 재회(再會)'로 모아지는 모습이 차분해서 좋다
대체로 펼쳐지는 이미지(Image)의 연상술은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詩 끝에 남겨지는 여운(餘韻)이 깊다
詩를 감상하니 나 역시,
어느 한적한 시골 정류장 같은 곳에서
그렇게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그 대상(對象)이 가을 같은 사람이라면,
더 할 나위 없겠으나 지금의 현실에서
그럴 일은 전혀 무망(無望)하지만 말이다
비록 지금의 나는 누더기 같은 삶이지만,
詩에서 말해지듯 권태로운 빛의 알갱이들을
한 계단씩 이동시키고 나서
내 生의 그 언젠가 잠시나마 꿈처럼 있었던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 속의 고운 추억을
그렇게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 여름의 기나긴 폭염 끝에서
나를 기다리는, 가을 바람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