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식사 / 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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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식사 / 이재무 사발에 담긴 둥글고 따뜻한 밥 아니라 비닐 속에 든 각 진 찬밥이다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 아니라 가축이 사료를 삼키 듯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 고수레도 아닌데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며 먹는 밥이다 반찬 없이 국물 없이 목메게 먹는 밥이다 울컥, 몸 안쪽에서 비릿한 설움 치밀어 올라오는 밥이다 피가 도는 밥이 아니라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밥이다 1983 <삶의 문학>에 詩, <귀를 후빈다>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섣달 그믐> 2012 文學思想 주관 제 27회 소월문학상 受賞 -------------------------- <감상 & 생각> 이 詩를 읽으니, 새삼 詩라는 건 머리로 언어를 다듬는 인위적人爲的 작업이 아니라, 가슴의 언어를 받아적는 민첩한 활동이란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럴 것이다 각설却說하고 아마도, 시인은 편의점이나 길가에서 비닐 속에 든 김밥이나 플라스틱 포장의 허술한 도시락 따위를 사먹다가 문득 든 느낌을 詩로써 풀어놓은 거 같다 생각하면, 이 삭막하고 촉박促迫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하루의 정해진 일과日課를 위해 돈으로 환가換價된 칼로리를 허겁지겁 입에 털어 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사회라는 비정한 기계의 한 조그만 부속품이 되어서 지정된 시간(끼니)마다 필요한 만큼의 윤활유를 치는 것처럼... 정말, 먹기 싫어도 사료를 먹을 수밖에 없는 가축의 식사와 뭐가 다를까? 고향집 어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까진 아니더라도 돈 계산이 아닌, 사람의 정情이 소북히 담긴 밥 한 그릇이 그리운 것이다 그리고 보니, 나 또한 오늘도 길 위의 각角 진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몸에서 한기寒氣가 떠날 날이 없다 - 희선, * 요즈음은 편의점에서 백종원 표 도시락이 인기라는 말을 고국의 지인으로 부터 들었다 (가격은 3500원) 백종원은 돈께나 벌겠으나, 그 역시 각진 차가운 밥인 것은 틀림이 없으리라
夕海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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