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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한 낯 / 박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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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38회 작성일 16-04-1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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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한 낯 / 박상수

문득 시간을 잊고
낯은 고요히 정지해 있네

건물은 부드럽게 탄성을 잃어가네
나는 미성년의 얼굴로
과거로부터 길어 올리는 물기 없는 기억을
낯설게 매만져 보네
상념이 피워 올리는 무용한 잎사귀들
언제나 혼자서 텅 빈 열차를 타네
완전한 명상이 철로를 따라 이어질수록
인간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지네

인간이 인간을 넘어서지 못하고
모래바람이 불어와 부서진 석상 위를 덮어갈 때

나는 낯선 역에 내리네
의지 없는 몽환
몽환이 둥글게 빚어버리는 모서리를
비로소 인간의 형상을,
떠난 사람들이 동물의 형상으로
백사장 위를 굳어갈 때
무릎을 꿇고
모래를 씹으며 바람을 거스를 때

낯은 고요히 정지해 있네

나는 온통 하얀 낯달의 정령에 휩싸여
침묵이 피워 올리는 여름나무 밑에 앉아 있네
이름 모를 열매에서 즙은 새어나오며
눈먼 자의 시간이 대기로 번져가네

* 박상수 : 2000년 <동서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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