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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짚은 점자 / 전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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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56회 작성일 15-12-0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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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짚은 점자 / 전남진

무심코 계단 난간에 붙은 점자를 건드렸다
끼어서는 안 될 대화를 엿들은 사람처럼
모르는 여자의 가슴에 손이 스친 것처럼
차가운 금속 요철이 손에 닿았다
어떨결에 나는 나의 전생을 생각했다
나를 짚고 갔을 지문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문자였을까
혹은, 나는 무엇을 짚고 이 생으로 건너왔을까
전생의 무덤 같은 점자들을 스치면
이토록 불규칙한 저항이 우리의 언어였다니
그 거친 언어에 대해
비밀스러운 속삭임에 대해
내가 모르는 약속에 대해
나도 모르는 나는 세상에 어떤 점자일까
잊히지 않는 것들이나 원망해야 할 추억들
나와 만났던 그렇고 그런 사람들의 이름들이나
아무도 들어주지 앟는 변명들을 눌러 새기며
자꾸만 늘어가는 내 질책의 무덤들은
어느 먼 다음 생에
누가 스치며 읽고 갈 점자일까

* 전남진 : 1999년 <문학동네>로 등단

*감상
- 나도 모르는 나는 세상에 어떤 점자일까
 참으로 오묘하고 심오한 묘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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