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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 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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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77회 작성일 15-12-0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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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 고영

산복도로에 아슬한 그녀의 방이 정박해 있다
저 방에 올라타기 위해선 먼저 계단을 올라야 한다
백마흔 여섯 계단이었던가, 그녀의 방은
바람이 불 때마다 외로운 돛대로 흔들렸다
마음이 찹찹해지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능청스럽게 딴청을 피우는 그녀의 방은
일 미터 높이의 파도에도 갑판이 부서질 만큼 연약한 쪽배다
저 쪽배엔 오래된 코끼리표 전기 밥통이 있고
성냥개피로 건조한 모형 함선이 있고
태풍주의보를 발령하는 십사인치 테레비전이 있다
마도로스 김을 집어삼킨 것은 이십 미터의 파고라고 했던가
사모아 제도에 배가 침몰하는 순간 마도로스 김은
어쩌면 산복도로에 뜬 저 쪽배의 항해를 걱정했을지 모른다
가랑잎 같은 아이를 쪽배에 싣고
혼자된 그녀는 신출내기 선장이 되었지만
가난의 먹이보다 견디기 힘든 건 지독한 그리움 이었다
그리움이 쌓일수록 계단 숫자도 늘고
어느덧 산꼭대기까지 밀려온 쪽배 한 척
그녀에게선 사모아 제도의 깊은 바다 냄새가 난다
높은 곳에 올라야 아빠별을 볼 수 있다고
밤마다 전갈자리 별에 닻을 내리는 쪽배의 지붕으로
백년 만에 유성비가 쏟아져 내린다

* 고영 : 2003년 <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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