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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아프다/길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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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나문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78회 작성일 15-12-2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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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아프다

            길상호


술 취해 전봇대에 대고
오줌 내갈기다 씨팔씨팔 욕이
팔랑이며 입에 달라붙을 때에도
전깃줄은 모르는 척, 아프다
꼬리 잘린 뱀처럼 참을 수 없어
수많은 길 방향 없이 떠돌 때에도
아프다 아프다 모르는 척,
너와 나의 집 사이 언제나 팽팽하게
긴장을 풀지 못하는 인연이란 게 있어서
때로는 축 늘어지고 싶어도
때로는 끊어버리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감전된 사랑이란 게 있어서
네가 없어도 나는 전깃줄 끝의
저린 고통을 받아
오늘도 모르는 척,
밥을 끓이고 불을 밝힌다
가끔 새벽녘 바람이 불면 우우웅...
작은 울음소리 들리는 것도 같지만
그래도 인연은 모르는 척

*인연이 다 하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로 해 받던 고통까지도...라고 부처가 말했던가,
모른척 하는 아프다아프다도, 애써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아직 인연이 들어 들쑤시는 소치,
가끔 새벽녘 바람 소리가, 저만치서 들리는 소리없는 울음 같지만
그래도 모른척 해야지, 사랑은 그렇게 해야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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