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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의 詩作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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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07회 작성일 15-08-07 15:29

본문

고니떼가 강을 거슬러오르고 있다
그 꽁무니에 물결이 여럿 올올이
고니떼를 따라가고 있다
가만, 물결이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니다
강 위쪽에서 아래쪽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수면의 검은 화선지 위에
고니떼가 붓으로 뭔가를 쓰고 있는 것,
붓을 들어 뭔가를 쓰고 있지만
웬일인지 썼다가 고요히 지워버리고
또 몇문장 썼다가는 지우고 있는 것이다
저 문장은 구차한 형식도 뭤도 없으니
대저 漫筆이라 해야 할 듯,
애써 무릎 끓고 먹을 갈지 않고
손가락 끝에 먹물 한 점 묻히지 않는
평생을 쓰고 또 써도 죽을 때까지
얇은 서책 한 권 내지 않는 저 고니떼,
이 먼 남쪽 만경강 하구까지 날아와서
물 위에 뜻모를 글자를 적는 심사를
나는 사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쓰고 또 쓰는 힘으로
고니떼가 과아니,과아니, 하며
한꺼번에 붓대를 들고 날아오르고 있다
허공에도 울음을 적는 저 넘치는 필력을
나는 어찌 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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