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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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위봉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76회 작성일 16-05-12 21:02본문
이별의 별
양 전 형
1.
제주항 방파제에 올라
너를 태우고 멀리 미끄러져 나가는
배를 봤다
너의 몸속으로 스며든 내 영혼들이
너의 옷자락을 흔들며
여객선 난간에 기대어 나를 향해 섰을 때
섬에 남은 나는
점점 멀어지는 배를 벌건 눈으로 봤다
아, 지금 너의 목소리가 몹시 귀고프다
2.
샘이,
내 안 깊은 곳 사랑의 샘이
눈물로 솟아오른다
가뭇없고 낡삭은 첫사랑처럼
그대도 잘가라, 잘가라 그대여,
후회는 늘 늦게 오는 것
너에게 못다 준 것들이 아파온다
3.
그래, 나에게 남은 건 너에게 주마
시간과 공간,
해 달 별 그리움 무엇이든
여유 있는 건 다 너에게 주마
너울춤 추듯 한가한 영혼이 있다면
마저 주마
태우다 남은 나머지 내 살 다 깎아
장마철 우의를 만들어 줄까
그대가 애만지던
내 손 잘라 한겨울 귀덮개를 만들어 줄까
내 눈알에 박힌 너의 눈동자 속으로
내 눈물 한 줄기 담아 넣을까
구슬 닮은 내 마음 떼어내어
그대 목에 걸어 놓고
그대 가는 길목마다 방울소리로 울어볼까
4.
밤도시를 속삭이던 언어들이
나를 가두고 문을 잠갔지만
어느 시장 골목을 휘청대는 또 다른 나와
그대가 데리고 떠난 또 하나의 내가
아주 작은 소리로 대화한다
잘 지내라고! 아파하지 말라고!
그러나 마침표 대답은 하나도 없다
5.
지난 일을 추억한다
내 가장 캄캄한 꿈속에
고독하고 향기로운 꽃 하나 피어나,
물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유배의 연꽃으로 피어나,
저 꽃 어떻게 지랴
어떻게 접으랴
고뇌했지만
우리가 죽인 많은 시간 속마다
연꽃은 초롱초롱하기만 했다
6.
죽은 시간들이 되살아나
즐빗이 늘어서서 긴 행렬로
서문시장 지나 탑동으로,
탑동 지나 사라봉으로 간다
쇠사슬 매인 내 목이
아직도 지지 않는 연꽃 향기 풍기며
비치적비치적 끌려 간다
그러나 그대여,
이별할 땐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7.
나 오늘 너를 위하여
밤도시에 인화된
우리의 꽃그림자들 모아
조용한 길섶에 모닥불 피우고
불꽃으로 타오르겠다
세상의 불합리와
감춰진 내 모순들 활활 태우겠다
8.
열정을 못 이긴 냉정이 죽고
상심한 물꽃은 방파제를 치며 피어오르지만
그래도 너 울지 마라
짐짓 모른 척 돌아보지도 마라
나도 그리 할 테니 아아 별이여 제발,
우리의 눈물을 다그치지 마세요
9.
이별의 별은 밤보다 늦게 뜬다
하늘 속살 깊은 곳에 숨어
환희와 고통과 그 무엇을 다 저지른 후
그 밤들을 배웅하는 듯
어둑새벽 서서히 뜬다
잘 가라 그대여! 잘 가라 그대여!
이별을 반짝거리다 사라진다
10.
굼깊은 우리의 사랑은
갯바위 되어 침묵한다
침묵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그대가 들어간다
그러나 우리 마주보아도
아무 말 하지 말자
마주한
바위들이 아무 말 없듯
가슴에 피맺히도록 침묵하자
내 눈 속에 너의 눈 속에
피고지고 피고지는 꽃들
가만가만 바라만 보자
11.
너의 자유와 내 자유가
이불 속에서 손잡고 나와
강파른 언덕길 질주하여 오르더니
절벽 아래로 날아내린다
바람 속 꽃 두 송이 나풀나풀 낙화한다
나의 구속과 너의 구속이 마주하여
천년의 침묵을 시작한다
멀리서 까마귀 두 마리 불서럽게 우짖고
탑동 방파제 넋자리마다
물결 아무리 부서진들 어찌하나,
뒵들이 없이도
세월은 별을 지우며
드팀없이 달려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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