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성찬식 /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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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563회 작성일 16-05-14 21:32본문
해지는 성찬식 / 이응준
그날 그 저녁, 나는 죽음을 보았다
진통제로 절은 어머니의 육신은
소시지에 마구 난도질을 해놓은 듯했다
나는 그 상처들 하나 하나에서
소리치는, 일그러진 인간의 수만 가지 얼굴들을 읽었다
요컨대, 구원을 바랄 수 없는 완벽한 절망이란 바로
그런 것, 지구는
단두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과나무로부터
아무 생각 없이 떨어진느 살찐 사과처럼,
어떤 그림자 덩어리가
내 정수리에서 쑤욱- 빠져나와 발등을 때리곤
병실 바닥을 굴러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낮에 여의사가 왔을 때
어머니는 그녀에게 크리스천이냐고 물었다
여의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천국에 갈 것이므로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저 고통만 없애달라고 애원했다
여의사는 주사를 놓았다
어머니가 어머니에서 시체로 변하는 순간,
나는 얼음이 되어가는 어머니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여의사는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어머니의
열려진 항문을 확인하고는
쓸쓸한 표정으로 사망을 선고했다
역시 후일담일뿐이지만, 그 경험 이후로 내게는,
사제처럼 행동하지 않는 의사들을 저주하는
귀여운 버릇이 생겼다
숨지기 한 시간쯤 전이었던가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코앞에 있는 나를 허공 대하듯 하며
자꾸만 나를 찾았다
그리고는 둘러싼 모두를 향해
내게 잘못하면 자기의 원수가 될 거라고 말하였다
어머니는 다시 누웠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 나는
현대무용가 김화숙 선생이 중고 턴테이블을 선물해준 덕택에
클래식광이었던 어머니의 LP판들을 듣는다 가끔 그런 식으로
어머니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어느
연극배우는 어머니의 표정을 그대로 흉내내며 눈시울을
붉히더라 나는 이제 슬프지 않아서 기쁘다
그저 나도
내게도 닥칠 것을 미리 보았을 뿐이니까
그날 그 저녁
문득, 내 정수리에서 빠져나와
발등을 때리곤
도르르- 병실 바닥을 굴러
침대 밑으로 들어갔던 어떤 그림자는,
아직도 거기에 웅크리고 있다
-----------------
* 이응준의 시에는 어머니가 압도적이다. 마마보이는 죽음과 그리움 쓸쓸함과 링크한다.
외디푸스의 변형이 죽음 앞에서 절규하는 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끔찍하다.
하지만 죽음을 규정하는 대신, 대면하는 시인의 모습은 저으기 감동적이다.
진혼곡 대신 성찬식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
그 이후는 신에게 바톤이 넘어갔다고 치자. 가끔 등장하는 보리수 아래도 좋고.
그날 그 저녁, 나는 죽음을 보았다
진통제로 절은 어머니의 육신은
소시지에 마구 난도질을 해놓은 듯했다
나는 그 상처들 하나 하나에서
소리치는, 일그러진 인간의 수만 가지 얼굴들을 읽었다
요컨대, 구원을 바랄 수 없는 완벽한 절망이란 바로
그런 것, 지구는
단두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과나무로부터
아무 생각 없이 떨어진느 살찐 사과처럼,
어떤 그림자 덩어리가
내 정수리에서 쑤욱- 빠져나와 발등을 때리곤
병실 바닥을 굴러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낮에 여의사가 왔을 때
어머니는 그녀에게 크리스천이냐고 물었다
여의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천국에 갈 것이므로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저 고통만 없애달라고 애원했다
여의사는 주사를 놓았다
어머니가 어머니에서 시체로 변하는 순간,
나는 얼음이 되어가는 어머니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여의사는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어머니의
열려진 항문을 확인하고는
쓸쓸한 표정으로 사망을 선고했다
역시 후일담일뿐이지만, 그 경험 이후로 내게는,
사제처럼 행동하지 않는 의사들을 저주하는
귀여운 버릇이 생겼다
숨지기 한 시간쯤 전이었던가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코앞에 있는 나를 허공 대하듯 하며
자꾸만 나를 찾았다
그리고는 둘러싼 모두를 향해
내게 잘못하면 자기의 원수가 될 거라고 말하였다
어머니는 다시 누웠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 나는
현대무용가 김화숙 선생이 중고 턴테이블을 선물해준 덕택에
클래식광이었던 어머니의 LP판들을 듣는다 가끔 그런 식으로
어머니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어느
연극배우는 어머니의 표정을 그대로 흉내내며 눈시울을
붉히더라 나는 이제 슬프지 않아서 기쁘다
그저 나도
내게도 닥칠 것을 미리 보았을 뿐이니까
그날 그 저녁
문득, 내 정수리에서 빠져나와
발등을 때리곤
도르르- 병실 바닥을 굴러
침대 밑으로 들어갔던 어떤 그림자는,
아직도 거기에 웅크리고 있다
-----------------
* 이응준의 시에는 어머니가 압도적이다. 마마보이는 죽음과 그리움 쓸쓸함과 링크한다.
외디푸스의 변형이 죽음 앞에서 절규하는 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끔찍하다.
하지만 죽음을 규정하는 대신, 대면하는 시인의 모습은 저으기 감동적이다.
진혼곡 대신 성찬식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
그 이후는 신에게 바톤이 넘어갔다고 치자. 가끔 등장하는 보리수 아래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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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두무지님의 댓글
두무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무 내용이 리얼 합니다.
진혼곡 대신, 성찬식이라는
과감한 시도는 아무나 할수 없는
시의 기교일 것 같습니다.
좋은 시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감사 합니다.
시앙보르님의 댓글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렵기는 해도, 시상이 어느만치 읽혀진다면, 그리고 희미한 떨림이라도 남겨진다면,
어렵다기보다 시의 한 속성 탓이라도 에둘러봅니다. ^^
열정이 넘치는 두무지 시인님, 건시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