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 / 고영민 > 내가 읽은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내가 읽은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내가 읽은 시

    (운영자 : 네오)

 

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 / 고영민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55회 작성일 16-05-28 00:10

본문




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


이 저녁엔 사랑도 事物이다
나는 비로소 울 준비가 되어 있다
천천히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늙은 나무를 보았느냐
서 있는 그대로 온전히 한 그루의 저녁이다

떨어진 눈물을 주을 수 없듯
떨어지는 잎을 주을 수 없어 오백년을 살고도 나무는
기럭아비 걸음으로 다시 걸어와 저녁 뿌리 속에 한 해를 기약한다
오래 산다는 것은 사랑이 길어진다는 걸까 고통이 길어진다는 걸까
잎은 푸르고, 해마다 추억은 붉을 뿐

아주 느리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저 나무의 집 주인은 한 달 새 가는귀가 먹었다
옹이처럼 소리를 알아먹지 못하는 나이테 속에도
한때 우물처럼 맑은 청년이 살았을 터이니,
오늘 밤도 소리를 잊으려 이른 잠을 청하고
자다 말고 일어나 앉아 첨벙,
몇 번이고 제 목소리를 토닥여 재울 것이다

잠깐, 나무 뒤로 누군가의 발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나무를 따라와 이 저녁의 깊은 뿌리 속에 반듯이 눕는 것은 분명
또 다른 너이거나 나,
재차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혼자 사는
저 나무의 집 주인은 낮은 토방에 앉아
아직도 시선이 집요하다

날이 조금 더 어두워지자
누군가는 듣고, 누군가는 영영 들을 수 없게
나무 속에서 참았던 울음소리가 비어져 나온다


                                                            - 고영민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악어』 (실천문학사)
『공손한 손』(창작과 비평)


<감상 & 생각>

사랑도 事物이라니...

하긴, 그걸 현상으로 보는 것으로 부터
모든 따뜻한 오해가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마저 사물이 된 가슴에서 솟아나는 울음소리는
차라리 정직해서 좋다.

- 사랑을 말하는 많은 느끼한, 언어의 나열보다는

시에 파묻혀 어제의 이별 같은 하늘을 올려다 보니,
먼 구름 같았던 젊음이 사라지는 모습처럼 잔잔하다.

그리고 보니...
추억에 엉긴 늙은 나무의 시간을 낚는 소리마저,
절간의 무심한 풍경(風磬)소리 같은 저녁이다.

길 잃은 어둠에도 스스럼 없이
나아가는 저녁은 참 많은 이야길 시인에게 하고 있다.

아니, 세월의 헛헛한 그림자 같은 나에게도
이 저녁처럼 그리 나아가라고
고요한 목소리로 말해주고 있다.


                                                            - 희선,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168건 76 페이지
내가 읽은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41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9 0 07-02
417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97 0 07-02
416 Sunny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30 0 07-01
415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39 0 06-30
414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57 0 06-28
413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75 0 06-26
412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14 0 06-24
411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18 0 06-22
410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14 0 06-20
40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6 0 06-18
408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5 0 06-18
407
삽 / 장진규 댓글+ 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2 0 06-17
40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37 0 06-16
40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8 0 06-16
40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14 0 06-14
403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35 0 06-14
40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94 0 06-13
401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86 0 06-12
40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62 0 06-12
399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17 0 06-12
39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64 0 06-12
39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11 0 06-11
396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72 0 06-10
395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7 0 06-10
39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21 0 06-10
39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0 0 06-09
392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26 0 06-08
39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8 0 06-08
390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98 0 06-06
389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62 0 06-03
388 바위봉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6 0 06-02
387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42 0 06-01
38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11 0 05-30
385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37 0 05-28
열람중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56 0 05-28
383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90 0 05-26
382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14 0 05-26
381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57 0 05-26
380 뿌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5 0 05-26
379 뿌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90 0 05-26
378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81 0 05-26
377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8 0 05-24
376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97 0 05-23
375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26 0 05-22
374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30 0 05-22
373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60 0 05-22
372 김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22 0 05-21
371 김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30 0 05-21
370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19 0 05-20
369 李진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30 0 05-19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