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 香湖 김진수 鵲巢感想文
페이지 정보
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70회 작성일 16-07-07 11:30본문
주문진 / 香湖 김진수 鵲巢感想文
어판장을 기웃거리는, 건어물 가게에서 활어를 찾는 사람들 오징어포를 씹으며 “고래는 어디가야 볼 수 있나요” “예약은 해야 하나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이미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나는 내색하지 않았고 그 손을 기억하지 못했다 훅 끼쳐오는
스마트폰을 들고 사람들이 바다를 들고 지나간다 토막 쳐진 파도의 혀는 더 이상 징징 거리지 않았다 나도 한 봉지, 떼 지어 춤추는 바다를 샀다 파도 없이도 서핑을 즐기는
빨대를 빠는 비닐봉지들, 나는 고래의 언어를 전송했다 답신 없는, 왜 나는 고래를 보고 싶어 하는가 누군가
때만 되면 판장 끝에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숨을 불어 넣는 긴 숨소리, 호루라기는 더 큰, 더 많은 고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디로 갔을까, 고래는? 주문진은?
鵲巢感想文
香湖 先生의 詩 ‘주문진’을 읽으며 솔직히 이 詩를 感想하는 데는 주문진도 다녀오고 나서 詩人의 마음을 보아야 할 것이다. 거저 인터넷 서핑을 통해 몇몇 사진으로 보고 感想한다는 것은 詩人께 예의가 아니겠다. 하지만, 글을 좀 더 진솔하게 읽기 위해 몇 자 글을 쓴다.
詩 종연을 보면 ‘어디로 갔을까, 고래는? 주문진은?’ 라고 했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우리 민족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은 7세기~10세기 때 고구려가 멸망하고 발해가 멸망했던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 영국의 어느 고고학자였다. 연해주에서 알류산 열도를 거쳐 알라스카 본토로 연결되는 아막낙 섬(Amaknak Island)이 있다. 우리 고유의 문화로 추정되는 한국식 온돌이 발견되기도 했다. 실제 이 온돌은 2천5백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오르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의 이동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전의 시간에서도 민족의 이동을 가름해 볼 수 있지만, 7세기~10세기 때도 마찬가지 일 것으로 예상해 본다. 아메리카 대륙의 4대 문명은 툴레(북극), 마야, 잉카, 아즈텍 문명으로 지금으로부터 500년~1000년까지 거슬러 오른다. 특히 아즈텍 문명의 발상지인 멕시코, 이 원주민의 원어에서도 볼 수 있듯, 우랄 알타이어 계통의 민족이 대거 이동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거저 필자 생각이다. 잘 못됐으면 말고,
물론 향호 선생께서 쓴, 고래는 여기서는 상징이 될 수도 있으며 제유의 성격도 강하다. 대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민족의 근원까지 생각해 볼 문제며 협의는 아무래도 詩人의 故鄕을 얘기할 수도 있지만, 각박한 社會를 사는 우리의 마음에 어쩌면 향수鄕愁를 일깨우듯 송곳처럼 닿는다. 필자 또한 타지에서 일하며 생계를 어렵게 꾸려가지만, 한 번씩 그 그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이다. 나이 들수록 더하다. 그러니 필자와 연배로 보아도 꽤 높으신 선생의 처지로 보면 더하겠다 싶다.
詩 문장을 보면 詩人께서 사용한 언어의 妙味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詩 3연에 보면 ‘바다를 들고 지나간다’, ‘토막 쳐진 파도의 혀’ 더 나가 3연은 과히 압도적이다. 은유한 문장은 시인의 말 하고자 하는 그 느낌을 더 크게 또는 사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표현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詩 5연에서 고래를 부르는 호루라기 소리에 지금은 고래사냥이 어느 정도 규제를 받고 있지만, 先史時代는 이 고래를 따라 이동했을 우리 민족을 다시금 생각게 한다. 물론 그때는 호루라기 같은 도구는 없었겠지만 진정 우리의 고래는 어디에 있는가? 두고두고 생각해 볼 문제다.
어판장을 기웃거리는, 건어물 가게에서 활어를 찾는 사람들 오징어포를 씹으며 “고래는 어디가야 볼 수 있나요” “예약은 해야 하나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이미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나는 내색하지 않았고 그 손을 기억하지 못했다 훅 끼쳐오는
스마트폰을 들고 사람들이 바다를 들고 지나간다 토막 쳐진 파도의 혀는 더 이상 징징 거리지 않았다 나도 한 봉지, 떼 지어 춤추는 바다를 샀다 파도 없이도 서핑을 즐기는
빨대를 빠는 비닐봉지들, 나는 고래의 언어를 전송했다 답신 없는, 왜 나는 고래를 보고 싶어 하는가 누군가
때만 되면 판장 끝에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숨을 불어 넣는 긴 숨소리, 호루라기는 더 큰, 더 많은 고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디로 갔을까, 고래는? 주문진은?
鵲巢感想文
香湖 先生의 詩 ‘주문진’을 읽으며 솔직히 이 詩를 感想하는 데는 주문진도 다녀오고 나서 詩人의 마음을 보아야 할 것이다. 거저 인터넷 서핑을 통해 몇몇 사진으로 보고 感想한다는 것은 詩人께 예의가 아니겠다. 하지만, 글을 좀 더 진솔하게 읽기 위해 몇 자 글을 쓴다.
詩 종연을 보면 ‘어디로 갔을까, 고래는? 주문진은?’ 라고 했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우리 민족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은 7세기~10세기 때 고구려가 멸망하고 발해가 멸망했던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 영국의 어느 고고학자였다. 연해주에서 알류산 열도를 거쳐 알라스카 본토로 연결되는 아막낙 섬(Amaknak Island)이 있다. 우리 고유의 문화로 추정되는 한국식 온돌이 발견되기도 했다. 실제 이 온돌은 2천5백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오르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의 이동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전의 시간에서도 민족의 이동을 가름해 볼 수 있지만, 7세기~10세기 때도 마찬가지 일 것으로 예상해 본다. 아메리카 대륙의 4대 문명은 툴레(북극), 마야, 잉카, 아즈텍 문명으로 지금으로부터 500년~1000년까지 거슬러 오른다. 특히 아즈텍 문명의 발상지인 멕시코, 이 원주민의 원어에서도 볼 수 있듯, 우랄 알타이어 계통의 민족이 대거 이동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거저 필자 생각이다. 잘 못됐으면 말고,
물론 향호 선생께서 쓴, 고래는 여기서는 상징이 될 수도 있으며 제유의 성격도 강하다. 대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민족의 근원까지 생각해 볼 문제며 협의는 아무래도 詩人의 故鄕을 얘기할 수도 있지만, 각박한 社會를 사는 우리의 마음에 어쩌면 향수鄕愁를 일깨우듯 송곳처럼 닿는다. 필자 또한 타지에서 일하며 생계를 어렵게 꾸려가지만, 한 번씩 그 그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이다. 나이 들수록 더하다. 그러니 필자와 연배로 보아도 꽤 높으신 선생의 처지로 보면 더하겠다 싶다.
詩 문장을 보면 詩人께서 사용한 언어의 妙味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詩 3연에 보면 ‘바다를 들고 지나간다’, ‘토막 쳐진 파도의 혀’ 더 나가 3연은 과히 압도적이다. 은유한 문장은 시인의 말 하고자 하는 그 느낌을 더 크게 또는 사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표현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詩 5연에서 고래를 부르는 호루라기 소리에 지금은 고래사냥이 어느 정도 규제를 받고 있지만, 先史時代는 이 고래를 따라 이동했을 우리 민족을 다시금 생각게 한다. 물론 그때는 호루라기 같은 도구는 없었겠지만 진정 우리의 고래는 어디에 있는가? 두고두고 생각해 볼 문제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