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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 백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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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이기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87회 작성일 16-10-01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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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검정은 자주 손이 간다.

  스무살이면 필요하대서 검정 정장을 사 입고 미팅과 상갓집과 결혼식을 다녔다.

  검정으로 데이트 하고 고개 숙이고 악수를 했다.
  지금의 감정도 그때와 같다.

  야근하고 집에 도착했을 때 방 안은 칠흑 같고, 불을 켜니 사랑하는 사람의 눈썹은 검정이다.
  밤에 나뭇가지는 그림자로 흔들린다.

  출생신고도 이력서도 부동산 계약서도 글자는 새까맣다.
  죽는 것은 대체로 암흑이라고 알려졌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고 했으나 급하면 막막하고 먹먹한 검정에도 손을 내민다.
  어둠이 눈에 익을 때쯤 검정은 검정이 아닌 게 된다.

  입 다물면 식도부터 항문까지 깜깜하다.
  갱은 더 자라지 않는다.
  나는 다 컸다.
 
백상웅, 시인수첩 겨울호 (2015)




  #감상

  눈을 감으면 '깜깜하다.'. 이건 아주 당연한 것. 우리는 깜깜한 것을 ‘검정’이라고 부른다. 시력이 없는 사람도 검정은 인지할 수 있다. 가장 본질에 가까운, 색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검정은 선호될 수 있다. 나는 ‘검정 정장’을 입을 수도 있다. 걸어온 이력의 색도 새까맣다. 온통 검정이다. 검정, 검정.

  그런데 “죽는 것은 대체로 암흑이라고 알려졌다.”

  우리는 자주 검정을 죽음과 연관 짓는다. 만약에 사후 세계가 없다면, 우리는 인지라는 인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지 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와 동의어다. 하지만 왜 우리는 죽음을 검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 “어둠이 눈에 익을 때쯤 검정은 검정이 아닌 게” 되니까. 우리는 이것을 ‘인지부조화’ 라고도 부를 수 있다.

  “입 다물면 식도부터 항문까지 깜깜하다.” 일상적으로 볼 수 없는 곳에도 시야가 있다. 일상적으로 인지할 수는 없겠지만,

  어두운 가운데 내 안의 것들의 물리적 깊이는 더 깊어지지 않는다. 물론, 정신적 깊이도.

  깊어질 수 없으니까 다 컸다. 성장하지 못하는 걸로 이미 끝이다. 단지, 변화만이 남았다. 검정이 눈에 익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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