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 / 허영숙 - 각본
모든 길은 사방으로 열려있고 정해진 각본 속에 나를 가둬두고 누가 돌리고 있다
무섭게 밀려오던 파도와 나를 떠나간 슬리퍼 한 짝, 그때 나는 주문진 백사장을 돌고 있었고 파도는 내 주변을 돌아나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종으로 횡으로 돌다 잠시 스쳐갔고 그 순간 슬리퍼 한 짝을 잃어버리라고 되어있었다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과 한 열(列)에 섰다 모든 별자리가 그 이름으로 빼곡했으므로 생은 여기서 완성되었다고 느꼈다 수천 년을 돌아 겨우 만난 사람인 듯 나는 이 입방체를 그만 빠져나오고 싶었다
오늘 돌아나간 저녁과 결별하고 다른 길 위에 매일 새로운 장면이 연출된다 장면들은 빠르게 눈앞을 스쳐 가거나 이미 지나간 장면이 다시 돌아와 그 시절의 캄캄한 뒷골목에서 호각을 불러대곤 했다
변두리까지 밀어냈다가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하는 신들의 손
늦은 오후, 풀 섶에 찌르레기 한 마리 죽어 있다 너는 멈추었으나 나는 가야한다 우리는 가을의 중심에서 이렇게 스쳐가야 한다고 적혀있다
2006 <시안> 詩부문으로 등단 시마을 작품선집 <섬 속의 산>, <가을이 있는 풍경> <꽃 피어야 하는 이유> 시마을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詩集, <바코드 2010>.<뭉클한 구름 2016>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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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그 언젠가, <빈센조 나탈리 Vincenzo Natali> 감독의 "Cube"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일단(一團)의 사람들이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입방체(立方體)의 방에 갇혀있으면서, 무작위(無作爲)로 추출되는 생명의 위협에 간단(間斷)없이 봉착하면서 17,576개의 살인미로를 탈출해나가는 숨막히는 영화다.
그들은 끊임없이 <큐브>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엔 모두 생명을 마감한다는 그런 스토리 Story.
시인도 시의 부제(副題)로 '각본'을 달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 같은 거대한 <큐브의 각본(脚本)>이 아닐까.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하는, 불행도 그렇고.
그러다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불의(不意)에 生을 마감하는 모습들도 그렇고.
그러나 유한하게 한정(限定)된 삶 안에서도, 갇혀있는 <큐브>에서 탈출하는 몸부림으로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랑과 행복.
그러나 그것을 획득하기가 지독히 힘들다는 것도 기실(其實), 잘 짜여진 神의 각본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며, 신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그 결말이라는 게 뻔한데, 발버둥치는 인간들이 안쓰럽단 생각을 조금이라도 할까.
그러나, 각본 안에서 인간들이 보여주는 필사의 노력은 <규브>를 만든 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
하여, 神도 때론 인간 앞에서 초라해진다. 인간이 신을 너머,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서 있을 때에는...
영원성(永遠性)과는 거리가 먼 한정된 삶의 스쳐감에서도, 서로에게 <연민(憐憫)의 사랑>을 간직한 인간이 <큐브>를 지켜보는 무감정한 신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결국에 한 줌의 재가 되어 세월의 저 편으로 덧없이 사라져 가더라도...
- 희선,
* 사족 : 詩意 (한정된 삶으로 각본처럼 정해진 세상에 머물다가, 스쳐가는 인연으로 떠나가는 아련한 슬픔) 에서는 다소 빗나간 감상이 되었지만, <큐브>의 한 느낌을 술회(述懷)하다 보니.. [부족한 시읽기에 시인의 너그러움을 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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