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종불역방(鬼腫不易方) / 조연호
페이지 정보
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56회 작성일 16-12-22 00:02본문
귀종불역방(鬼腫不易方) / 조연호
소중히 꿰인 날들이 바늘을 돌려주지 않으니까
아욱이 자라고 있었다
잔멸이 떠다니는 여름
혼자 꼬리를 말고 파양(罷養)을 다했다
창애에 걸쳐 저희가 헛됨을 잃은 이 귀종(鬼腫)으로 연우(延虞)하소서
밤을 기어 다니는 잿빛 연기물(緣起物)이 있었지만
그 권 一은 낙질되어 비둘기가 토한 것 같이 되었다
너희 정상물은 이 변신물 위로 걸어오라, 불뢰자(不牢者)여
악신일(惡神日)에, 사람의 풍식(風蝕)이 식기를 기다린다
몸에서 나온 변물(變物)을 끼얹은 곳에
아욱이 자라고 있었다
鵲巢感想文
까마귀가 흰 고양이 위에 앉았다. 흰 고양이는 꼬리 한 번 치켜세우더니 깊은숨 몰아쉬다가 파릇하게 뜬다. 까마귀는 본능적으로 묵등(墨等)의 길을 걷는다. 밤비의 치맛자락 아래 고장 난 확성기는 금이 간 선글라스 낀 저녁을 향해 먹먹한 노을만 그린다.
의자에 놓인 판자때기가 결국 검은 갈퀴에 밀쳐 툭 떨어진다. 왼쪽 오른쪽, 오른쪽 왼쪽 훅처럼 치다가 문밖으로 나간다. 단추 같은 눈동자만 하늘 바라본다. 언어의 바다에 뚜껑 없는 병이다. 거저 침묵한다.
서두가 길었다. 언뜻, 詩人 조연호의 詩를 읽다가 한 줄 긁적였다. 시인은 한때 미래파라 불리며 난해한 詩 쓰기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미래파라는 말도 시인 권혁웅에 의해 불리게 된 거로 알고 있지만, 시간은 참 오래된 것 같다.
그러면 미래파란 무엇인가? 뭐 나는 문학비평가가 아니니까, 권혁웅의 ‘미래파’를 추천한다.
위 詩를 보듯이 詩가 무엇을 뜻하는지 일반 독자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글로 써도 알아보기 힘 드는 일인데 한자어까지 많아 특히 더 어렵다. 몇 줄 읽다가 그만 덮어버리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詩가 뭔 대수로운 일이라고 하며 말이다.
시인이면 우선, 우리말을 사랑해야 한다. 나는 수년을 커피로 보냈지만, 이 업계에도 유식하다고 하면 대체로 해외 안 다녀본 사람이 없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영어 몇 마디 못하는 사람이 없다. 이들 대부분은 컵이나 각종 유인물까지 영어 표기를 좋아하는데 참 한마디로 꼴사납다. 나는 영어 못해서 안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면 한글 사랑이 먼저다.
나는 개인적으로 詩人 조연호의 詩라면 ‘저녁의 기원’에 한 표 던진다. 정말 이 시집을 읽을 때가 좋았다. 조연호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먹의 세계에 더 가까워졌다. 이제는 그의 시집을 사다 보기에는 부담이 간다. 위 詩는 아무래도 자신의 어떤 작품집에 대한 평가와 거기서 나온 반향에 못 견디는 어떤 심정이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아니면 말고,
소중히 꿰인 날들이 바늘을 돌려주지 않으니까
아욱이 자라고 있었다
잔멸이 떠다니는 여름
혼자 꼬리를 말고 파양(罷養)을 다했다
창애에 걸쳐 저희가 헛됨을 잃은 이 귀종(鬼腫)으로 연우(延虞)하소서
밤을 기어 다니는 잿빛 연기물(緣起物)이 있었지만
그 권 一은 낙질되어 비둘기가 토한 것 같이 되었다
너희 정상물은 이 변신물 위로 걸어오라, 불뢰자(不牢者)여
악신일(惡神日)에, 사람의 풍식(風蝕)이 식기를 기다린다
몸에서 나온 변물(變物)을 끼얹은 곳에
아욱이 자라고 있었다
鵲巢感想文
까마귀가 흰 고양이 위에 앉았다. 흰 고양이는 꼬리 한 번 치켜세우더니 깊은숨 몰아쉬다가 파릇하게 뜬다. 까마귀는 본능적으로 묵등(墨等)의 길을 걷는다. 밤비의 치맛자락 아래 고장 난 확성기는 금이 간 선글라스 낀 저녁을 향해 먹먹한 노을만 그린다.
의자에 놓인 판자때기가 결국 검은 갈퀴에 밀쳐 툭 떨어진다. 왼쪽 오른쪽, 오른쪽 왼쪽 훅처럼 치다가 문밖으로 나간다. 단추 같은 눈동자만 하늘 바라본다. 언어의 바다에 뚜껑 없는 병이다. 거저 침묵한다.
서두가 길었다. 언뜻, 詩人 조연호의 詩를 읽다가 한 줄 긁적였다. 시인은 한때 미래파라 불리며 난해한 詩 쓰기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미래파라는 말도 시인 권혁웅에 의해 불리게 된 거로 알고 있지만, 시간은 참 오래된 것 같다.
그러면 미래파란 무엇인가? 뭐 나는 문학비평가가 아니니까, 권혁웅의 ‘미래파’를 추천한다.
위 詩를 보듯이 詩가 무엇을 뜻하는지 일반 독자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글로 써도 알아보기 힘 드는 일인데 한자어까지 많아 특히 더 어렵다. 몇 줄 읽다가 그만 덮어버리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詩가 뭔 대수로운 일이라고 하며 말이다.
시인이면 우선, 우리말을 사랑해야 한다. 나는 수년을 커피로 보냈지만, 이 업계에도 유식하다고 하면 대체로 해외 안 다녀본 사람이 없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영어 몇 마디 못하는 사람이 없다. 이들 대부분은 컵이나 각종 유인물까지 영어 표기를 좋아하는데 참 한마디로 꼴사납다. 나는 영어 못해서 안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면 한글 사랑이 먼저다.
나는 개인적으로 詩人 조연호의 詩라면 ‘저녁의 기원’에 한 표 던진다. 정말 이 시집을 읽을 때가 좋았다. 조연호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먹의 세계에 더 가까워졌다. 이제는 그의 시집을 사다 보기에는 부담이 간다. 위 詩는 아무래도 자신의 어떤 작품집에 대한 평가와 거기서 나온 반향에 못 견디는 어떤 심정이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아니면 말고,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