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구두 /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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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15회 작성일 16-12-24 20:31본문
검은 구두 / 김성태
그에게는 계급이 없습니다 /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동굴이며 / 구름의 속도로 먼 길을 걸어온 수행자입니다 / 궤도를 이탈한 적 없는 그가 걷는 길은 / 가파른 계단이거나 어긋난 교차로입니다 / 지리멸렬한 지하철에서부터 먼 풍경을 지나 / 검은 양복 즐비한 장례식장까지 / 그는 나를 짐승처럼 끌고 왔습니다 / 오늘 나는 기울기가 삐딱한 그를 데리고 / 수선가게에 갔다가 그의 습성을 알았습니다 / 그는 상처의 흔적을 숨기기 좋아하고 / 내가 그의 몸을 닳게 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 나는 그와 정면으로 마주한 적은 없지만 / 가끔 그는 코를 치켜들기 좋아합니다 / 하마의 입으로 습기 찬 발을 물고 있던 그가 / 문상을 하러 와서야 나를 풀어줍니다 /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그를 만져보니 / 새의 날개 안쪽처럼 바닥이 움푹 파였습니다 / 두 발의 무게만큼 포물선이 깊어졌습니다 / 그의 입에 잎사귀를 담을 만큼 / 소주 넉 잔에 몸이 가벼워진 시간 / 대열에서 이탈한 코끼리처럼 / 이곳까지 몰려온 그들이 서로 코를 어루만지며 / 막역 없이 어깨를 부둥켜안고 있습니다 / 취한 그들이 영정사진처럼 계급이 없어 보입니다 / 그가 그에게 정중한 인사도 없이 / 주인이 바뀐지도 모르고 / 구불구불 길을 내며 집으로 갑니다
鵲巢感想文
시인 김성태는 젊은 시인이다. 시제 검은 구두는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이 시를 함께 보자. 여기서,
시제 ‘검은 구두’는 의인화 기법으로 쓴 것이다. 더 나가 활유법으로 쓴 문장이라 볼 수 있다. 검은 구두는 시인의 개인적 경험을 통한 육화한 시이지만, 사회 통념적으로 우리의 생활문화를 말한다.
시 문장에서 인칭대명사 ‘그’는 곧 구두를 얘기하면서도 시인 자신이다. 그는 계급이 없다.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며 주인이 가고자 하는 곳이면 늘 따라나서는 하수인과 다름없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동굴이며 구름의 속도로 먼 길을 걸어온 수행자는 구두를 신고 다니는 자신을 얘기한 것이지만, 이 사회를 사는 모든 이를 반영한다. 세상은 동굴처럼 좁고 구름처럼 암담하다. 모두가 빨리빨리 젖는 문화는 사회 통념이 되었다.
직장인의 비애라고 할까 궤도를 이탈한 적 없는 우리는 어쩌면 가파른 계단을 스스로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며 혹은 어긋난 교차로에 들어선 것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이리저리 흩은(지리멸렬한) 지하철 풍경이나 검은 양복 즐비한 장례식장까지 우리는 짐승처럼 그렇게 갈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안 반듯한 무게를 받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은 비틀거리는 삶을 보조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검은 구두는 나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사회상이다.
이 시와 관계없는 말이지만, 구두는 우리가 신고 다니는 구두도 있고 구두(口頭)도 있다. 구두로 약속한다고 표현할 때는 후자다. 구두의 일반적인 색상은 까맣다. 사물의 까만 색상을 구두로 표현하는 것은 좋은 시적 상상이다. 예를 들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은 까맣다.
나는 오늘도 구두를 신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어쩌면 이 구두를 신고 나는 잠시 외출 중이다. 외출은 단지 시간을 보내는 한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며 좋은 작품을 쓰려는 방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이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육체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모두 구두처럼 나를 안으며 영정사진처럼 계급이 없어 보이기도 하니까, 지금 이 순간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막역 없이 부둥켜안고 있으니까 말이다.
시인이 걸었던 그 길처럼 우리도 마냥 비틀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이것은 서민이면 모두가 통감하는 내용이다.
그에게는 계급이 없습니다 /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동굴이며 / 구름의 속도로 먼 길을 걸어온 수행자입니다 / 궤도를 이탈한 적 없는 그가 걷는 길은 / 가파른 계단이거나 어긋난 교차로입니다 / 지리멸렬한 지하철에서부터 먼 풍경을 지나 / 검은 양복 즐비한 장례식장까지 / 그는 나를 짐승처럼 끌고 왔습니다 / 오늘 나는 기울기가 삐딱한 그를 데리고 / 수선가게에 갔다가 그의 습성을 알았습니다 / 그는 상처의 흔적을 숨기기 좋아하고 / 내가 그의 몸을 닳게 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 나는 그와 정면으로 마주한 적은 없지만 / 가끔 그는 코를 치켜들기 좋아합니다 / 하마의 입으로 습기 찬 발을 물고 있던 그가 / 문상을 하러 와서야 나를 풀어줍니다 /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그를 만져보니 / 새의 날개 안쪽처럼 바닥이 움푹 파였습니다 / 두 발의 무게만큼 포물선이 깊어졌습니다 / 그의 입에 잎사귀를 담을 만큼 / 소주 넉 잔에 몸이 가벼워진 시간 / 대열에서 이탈한 코끼리처럼 / 이곳까지 몰려온 그들이 서로 코를 어루만지며 / 막역 없이 어깨를 부둥켜안고 있습니다 / 취한 그들이 영정사진처럼 계급이 없어 보입니다 / 그가 그에게 정중한 인사도 없이 / 주인이 바뀐지도 모르고 / 구불구불 길을 내며 집으로 갑니다
鵲巢感想文
시인 김성태는 젊은 시인이다. 시제 검은 구두는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이 시를 함께 보자. 여기서,
시제 ‘검은 구두’는 의인화 기법으로 쓴 것이다. 더 나가 활유법으로 쓴 문장이라 볼 수 있다. 검은 구두는 시인의 개인적 경험을 통한 육화한 시이지만, 사회 통념적으로 우리의 생활문화를 말한다.
시 문장에서 인칭대명사 ‘그’는 곧 구두를 얘기하면서도 시인 자신이다. 그는 계급이 없다.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며 주인이 가고자 하는 곳이면 늘 따라나서는 하수인과 다름없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동굴이며 구름의 속도로 먼 길을 걸어온 수행자는 구두를 신고 다니는 자신을 얘기한 것이지만, 이 사회를 사는 모든 이를 반영한다. 세상은 동굴처럼 좁고 구름처럼 암담하다. 모두가 빨리빨리 젖는 문화는 사회 통념이 되었다.
직장인의 비애라고 할까 궤도를 이탈한 적 없는 우리는 어쩌면 가파른 계단을 스스로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며 혹은 어긋난 교차로에 들어선 것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이리저리 흩은(지리멸렬한) 지하철 풍경이나 검은 양복 즐비한 장례식장까지 우리는 짐승처럼 그렇게 갈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안 반듯한 무게를 받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은 비틀거리는 삶을 보조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검은 구두는 나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사회상이다.
이 시와 관계없는 말이지만, 구두는 우리가 신고 다니는 구두도 있고 구두(口頭)도 있다. 구두로 약속한다고 표현할 때는 후자다. 구두의 일반적인 색상은 까맣다. 사물의 까만 색상을 구두로 표현하는 것은 좋은 시적 상상이다. 예를 들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은 까맣다.
나는 오늘도 구두를 신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어쩌면 이 구두를 신고 나는 잠시 외출 중이다. 외출은 단지 시간을 보내는 한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며 좋은 작품을 쓰려는 방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이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육체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모두 구두처럼 나를 안으며 영정사진처럼 계급이 없어 보이기도 하니까, 지금 이 순간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막역 없이 부둥켜안고 있으니까 말이다.
시인이 걸었던 그 길처럼 우리도 마냥 비틀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이것은 서민이면 모두가 통감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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