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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주소 / 권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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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84회 작성일 17-01-0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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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주소 / 권행은






    강물도, 가끔은 / 구름의 등뼈를 물어뜯어서 / 부드러운 이빨 사이로 새의 깃털이 씹힌다 // 칼로 베여도 아프지 않는 육체 / 무수히 많은 칼을 문 입들에게 베이며 / 외줄을 타는 물의 혈관에는 / 골격을 바꿀 수 없는 새의 눈물이 한 움큼 / 무뎌지는 발톱을 세우고 있다 // 기척이 밀리는 밤 / 길은 어디로도 뻗을 수 있어서 / 미처 방향을 잡지 못한 고요가 소란하고 / 삶은 즐거운 것일까 / 지느러미는 벌써 제 몸에서 나온 시간에 쫓기고 있다 // 둥근 소용돌이 속에서 / 풀지 못한 울음이 부패되어 희게 반짝일 때 / 지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떠밀리는 물낯들, / 비손들, 저 사소한 약속들 / 그러나 / 지느러미가 그물에 걸리는 건 물고기가 된 새들의 숙명이다 // 양수리에서 / 갈라지지 않으려고 밤새 깍지를 끼어도 / 아침이면 어김없이 풀려있는 우리들의 물목, / 팔뚝에서 뚝뚝 물의 피가 흐른다 // 강에 물려서 / 아픈 새 한 마리 / 버려진 물의 주소를 물고 힘껏 행간을 날아오른다



鵲巢感想文
    1.
    시를 읽으면 재밌다. 마치 강물에서 바로 낚은 언어 횟감을 놓고 회칼로 등뼈를 기대며 한 꺼풀 벗겨내는 작업과 같다. 아주 잘게 쓸어 한 입 입 안 가득 넣고 씹을 때는 어감은 팔딱팔딱 산, 낙지가 아닌 낙지 같기도 하며 젤리 같은 것도 아닌 것이 향긋하며 그 씹는 맛은 가히 뭐라 할 수 없다.

    이 시는 제유로 쓴 시어가 많다. 강물이거나 물이거나 구름과 등뼈 그리고 새의 깃털이나 발톱, 물목과 물낯. 이러한 표현은 독자가 읽기에 혼돈이 올 수 있지만, 함수관계를 따져 읽으면 그리 복잡한 글은 아니다.

    비유를 놓을 때, 미당은 이렇게 얘기했다. 부드러운 것은 여자, 강하고 억센 것은 남자로 비유한다고 했다. 자연적인 산물로 예를 들면 강물이나 옹달샘, 빗물, 바다 같은 것은 여자, 돌멩이, 산, 그리고 나무는 남자로 비유하기 좋은 시어다. 강물은 시간을, 새는 하늘 높이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 같은 것이다. 여기서는 물고기, 지느러미, 부드러운 이빨, 물낯 같은 시어는 강물에 속하며 깃털과 발톱, 구름의 등뼈는 새에 속하는 극성이 확연한 시어다.

    위 시를 보면, 시 쓰는 작업에 대한 시인의 고뇌 같은 것이 보인다. “강물도, 가끔은 / 구름의 등뼈를 물어뜯어서 / 부드러운 이빨 사이로 새의 깃털이 씹힌다//”는 문장에서 ‘강물도 가끔은’은 주어부지만 엄연히 객체다. 주체는 구름의 등뼈가 된다. 새의 깃털은 강물로 회귀하고픈 어떤 귀소본능을 그린다. 시 문장에서는 구름의 등뼈를 뜯기는 거로 표현했지만, 이는 강물의 입장에서 쓴 것이다. 전지적 화자 시점으로 쓴 글로 실은 구름의 등뼈가 강물을 뜯고 있다.

    “칼로 베여도 아프지 않는 육체 / 무수히 많은 칼을 문 입들에게 베이며 /” 이 문장은 강물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말한다. “외줄을 타는 물의 혈관에는 / 골격을 바꿀 수 없는 새의 눈물이 한 움큼 / 무뎌지는 발톱을 세우고 있다” 외줄을 타는 물의 혈관은 구름의 등뼈 즉 새의 갈망이다. 구름의 등뼈는 화자다. 마치 인디언식 이름 붙이기가 되었지만, 재밌는 표현이다. 골격을 바꿀 수 없는 새의 눈물이 한 움큼이라는 말은 시에 맹신과 절대 지지와 절대 해체를 강하게 보여주는 화자의 신념이다. 결국, 무뎌지는 발톱을 세우듯 도달할 수 없는 갈등과 몰입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길은 어디로도 뻗을 수 있어서 / 미처 방향을 잡지 못한 고요가 소란하고 / 삶은 즐거운 것일까 / 지느러미는 벌써 제 몸에서 나온 시간에 쫓기고 있다” 시 해체에 대한 화자의 고뇌다. 결국, 이러한 모든 것이 마음의 동화가 된 것은 부패다. 함께 썩어가는 길로 화자는 표현했다. 그만큼 시에 대한 몰입이겠다. 부패는 곧 바닥이며 바닥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어떤 기반의 토대가 된다.

    노자의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대영약충大盈若沖 기용불궁其用不窮이라 했다.* 이 말은 크게 찬 것은 비어있는 것과 같으나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정도면 모든 것을 안을 수 있는 자세가 된다.

    “풀지 못한 울음이 부패되어 희게 반짝일 때 / 지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떠밀리는 물낯들, / 비손들, 저 사소한 약속들 / 그러나 / 지느러미가 그물에 걸리는 건 물고기가 된 새들의 숙명이다” 공부는 그 끝이 없건만, 이러한 도가 극에 다다를 때 시의 승화와 이로써 별빛 같은 존재가 된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이 시에서는 잠깐 빌려 넣었다. 강물 => 구름의 등뼈=>새의 깃털=> 발톱=> 물고기=> 새, 이때 새는 또 다른 새로 물의 주소를 물고 행간을 박차 오르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2.
    어머니는 예전에 나를 묻어놓고 떠났다. 흔들의자에 앉아 있다. 어렴풋한 아물지 않은 뼈가 모래에 억눌려 숨을 쉴 수가 없다. 파도가 철썩철썩 창 너머 바다만 본다. 모래사장에 갓 깨어난 북별은 바다냄새만 그립다. 내 입에서 바다 냄새가 난다. 바다 기러기가 새카맣게 하늘 뒤덮었다. 눈, 코, 귀, 입 모두 모래주머니다. 치약처럼 고름이 난다. 이렇게 끝날 순 없다. 얼룩무늬 따라 지워진 것을 다시 찾는다. 쓰레기통처럼 틈새를 비집고 바늘 같은 구멍에 날카로운 발톱만 본다. 미아처럼 등껍질이 따갑기만 하다. 안단테 아다지오, 아다지오 안단테 저 멀리 뱃고동 소리가 난다. 떠나야 한다. 나는 떠나야 한다. 바다가, 바다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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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필자의 책 ‘카페 간 노자’ 260p~261p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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