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구는 거울이다 /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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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06회 작성일 17-01-12 00:01본문
모든 가구는 거울이다 / 이승희
왜 모든 세간은 나를 보는지 생각하는 저녁이 시작되었다. 마주 앉은 자세로 가구의 물음에 답을 하다가 가구에 등을 기대면 우린 같은 방향이 되어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침묵이 된다. 가구들의 이마는 때로 비정상적으로 증식되어 방 안엔 온통 가구들의 이마만이 있다. 나는 가구들 사이를 오가며 오늘은 어떤 비밀을 풀어 밥을 해먹나 생각한다. 가구들이 더 멀리 달아나지 않는 것은 이미 달아나서 여기에 있는 것. 그건 지금 내가 여기 있는 이유와 같은 것.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가만히 멈춰 서서 낯설게 바라보는 어항 같아서 어떤 날은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은 채 잠들었다, 어떤 날은 내게 아예 오지 않았다. 부주의한 날들은 그렇게 흘러간다. 사이는 살면서 생기는 것, 살아서 생기는 것, 가끔 그 사이에 사다리를 놓고 달에 오르듯 가구에게로 건너간다. 그래도 어쨌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사이에 또 무수한 사이가 생길 때까지는 말이다.
鵲巢感想文
이 시를 읽으니까 어느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가구는 과학이다. 어떤 이는 침대는 과학이 아니라 가구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초등학생은 침대는 과학이라고 까지 이해하기도 했다. 광고와 마케팅전략에 따른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본다.
이 시는 가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구家具가 아니라 가구架構다. 물론 이외의 가구家口라는 단어도 있으며 허구라는 또 다른 말, 가구假構도 있다. 즉 집 안에 쓰는 기구 주로 장롱이나 책장, 탁자라는 가구가 아니라 어떤 구조물에 쓰이는 낱낱의 재료를 말한다. 이것이 가구架構다. 시렁 가架자에 얽는다는 뜻을 지닌 구構자다.
첫 문장을 보면 세간이라는 단어도 나오는데 이는 집안 살림에 쓰는 물건이 아니라 세상을 말한다. 세상을 들여다보며 자기 성찰에 가까운 그런 저녁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가구의 물음이라는 시구는 독서를 은유한다. 독서와 함께 독서에 몰입함으로써 속도는 빠르고 침묵은 흐른다. 책을 읽음으로 나의 머리는 온통 상상의 구조물로 가득하다. 밥을 해 먹는 생각은 독서의 결과를 끌어내는 어떤 작업의 실마리다. 시 후반에 들어서면 달이라는 시어가 나온다. 달은 화자의 이상향이다. 사다리를 놓는다는 말은 이상에 다다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같은 것을 은유한다. 가구의 이마를 보고 밤샘 생각하고 생각한 나머지 사이를 벌려놓는 것은 시인의 일이다. 이 사이로 인해 또 다른 사이(틈)가 나온다면 가구의 이마를 보는 것은 헛된 일은 아닐 것이다.
전에도 한 번 설명한 바 있다. 우리나라 말은 동음이의어가 상당히 많다. 시를 쓰는데 어떤 착란을 유발하며 재미난 표현으로 엮을 수 있어야 시인이겠다.
이렇게 시 감상문 적다가 보면 수많은 사이(틈)가 생각난다. 방금 떠오른 시어 하나가 생각났다. 연탄이다. 연탄으로 예를 들어 시를 지어보자.
나란히 앉은 연탄 / 鵲巢
따뜻한 연탄은 하루를 말끔하게 씻는다. 연탄 둘레에 앉아 낮은 음부를 읽을 때면 세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몰입에 들어간다. 높은 음부는 낮은 음부의 배꼽 위와 같다. 마치 걷는 토끼처럼 낮은 신발을 보듬는다. 진흙에 묻은 곰 발바닥은 물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운명으로 치자면 마늘과 쑥 같은 것 달을 향한 열 손가락은 춤을 춘다. 분홍 나막신은 구름을 몰며 하얗게 바람 불어오라! 다시, 다시 춤을 춘다. 악보에 없는 차이콥스키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운다. 지휘봉처럼 너는 웃었지만, 활활 불붙는 하루 열기는 온전히 받아준다. 두 손 씻고 두 눈 닦고 맑은 귀로 듣는 연탄, 나란히 앉아 하루는 따뜻하다. 깊고 우묵한 주름이 펴지고 날아가는 새에 얼굴을 묻고 겨울 온도를 잊은 듯 흑ㆍ백을 논하는 자리 음부, 연탄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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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이승희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1997년 [시와 사람] 시 당선 1999년 경향신문에 신춘문예 시 부분 당선
왜 모든 세간은 나를 보는지 생각하는 저녁이 시작되었다. 마주 앉은 자세로 가구의 물음에 답을 하다가 가구에 등을 기대면 우린 같은 방향이 되어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침묵이 된다. 가구들의 이마는 때로 비정상적으로 증식되어 방 안엔 온통 가구들의 이마만이 있다. 나는 가구들 사이를 오가며 오늘은 어떤 비밀을 풀어 밥을 해먹나 생각한다. 가구들이 더 멀리 달아나지 않는 것은 이미 달아나서 여기에 있는 것. 그건 지금 내가 여기 있는 이유와 같은 것.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가만히 멈춰 서서 낯설게 바라보는 어항 같아서 어떤 날은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은 채 잠들었다, 어떤 날은 내게 아예 오지 않았다. 부주의한 날들은 그렇게 흘러간다. 사이는 살면서 생기는 것, 살아서 생기는 것, 가끔 그 사이에 사다리를 놓고 달에 오르듯 가구에게로 건너간다. 그래도 어쨌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사이에 또 무수한 사이가 생길 때까지는 말이다.
鵲巢感想文
이 시를 읽으니까 어느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가구는 과학이다. 어떤 이는 침대는 과학이 아니라 가구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초등학생은 침대는 과학이라고 까지 이해하기도 했다. 광고와 마케팅전략에 따른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본다.
이 시는 가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구家具가 아니라 가구架構다. 물론 이외의 가구家口라는 단어도 있으며 허구라는 또 다른 말, 가구假構도 있다. 즉 집 안에 쓰는 기구 주로 장롱이나 책장, 탁자라는 가구가 아니라 어떤 구조물에 쓰이는 낱낱의 재료를 말한다. 이것이 가구架構다. 시렁 가架자에 얽는다는 뜻을 지닌 구構자다.
첫 문장을 보면 세간이라는 단어도 나오는데 이는 집안 살림에 쓰는 물건이 아니라 세상을 말한다. 세상을 들여다보며 자기 성찰에 가까운 그런 저녁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가구의 물음이라는 시구는 독서를 은유한다. 독서와 함께 독서에 몰입함으로써 속도는 빠르고 침묵은 흐른다. 책을 읽음으로 나의 머리는 온통 상상의 구조물로 가득하다. 밥을 해 먹는 생각은 독서의 결과를 끌어내는 어떤 작업의 실마리다. 시 후반에 들어서면 달이라는 시어가 나온다. 달은 화자의 이상향이다. 사다리를 놓는다는 말은 이상에 다다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같은 것을 은유한다. 가구의 이마를 보고 밤샘 생각하고 생각한 나머지 사이를 벌려놓는 것은 시인의 일이다. 이 사이로 인해 또 다른 사이(틈)가 나온다면 가구의 이마를 보는 것은 헛된 일은 아닐 것이다.
전에도 한 번 설명한 바 있다. 우리나라 말은 동음이의어가 상당히 많다. 시를 쓰는데 어떤 착란을 유발하며 재미난 표현으로 엮을 수 있어야 시인이겠다.
이렇게 시 감상문 적다가 보면 수많은 사이(틈)가 생각난다. 방금 떠오른 시어 하나가 생각났다. 연탄이다. 연탄으로 예를 들어 시를 지어보자.
나란히 앉은 연탄 / 鵲巢
따뜻한 연탄은 하루를 말끔하게 씻는다. 연탄 둘레에 앉아 낮은 음부를 읽을 때면 세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몰입에 들어간다. 높은 음부는 낮은 음부의 배꼽 위와 같다. 마치 걷는 토끼처럼 낮은 신발을 보듬는다. 진흙에 묻은 곰 발바닥은 물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운명으로 치자면 마늘과 쑥 같은 것 달을 향한 열 손가락은 춤을 춘다. 분홍 나막신은 구름을 몰며 하얗게 바람 불어오라! 다시, 다시 춤을 춘다. 악보에 없는 차이콥스키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운다. 지휘봉처럼 너는 웃었지만, 활활 불붙는 하루 열기는 온전히 받아준다. 두 손 씻고 두 눈 닦고 맑은 귀로 듣는 연탄, 나란히 앉아 하루는 따뜻하다. 깊고 우묵한 주름이 펴지고 날아가는 새에 얼굴을 묻고 겨울 온도를 잊은 듯 흑ㆍ백을 논하는 자리 음부, 연탄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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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이승희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1997년 [시와 사람] 시 당선 1999년 경향신문에 신춘문예 시 부분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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