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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未生 / 권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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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28회 작성일 17-01-2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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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未生 / 권규미




    사월이었다 태양은 에레보스의 작은 풀밭이었다 때때로 나른한 풍우(風雨)를 저어 쌓아올린 제단마다 허방이었다 백발의 북두성과 붉은 입술 풍뎅이마저 소매를 당겨 얼굴을 가리던 어느 아침이었다 불각 중 인간체험을 하는 영적존재처럼 모든 말(言)은 사막의 모래알이던 전생으로 내달리고 만만파파의 적막들이 숟가락을 빼앗긴 저녁의 꽃처럼 물방울의 팔에 매달려 엄마, 엄마, 가슴을 치고 시간의 녹슨 튀밥냄비 불멸의 옥수수 한 알 삼키지 않았다 천진한 바다엔 출렁거리는 푸른 심장과 심장들의 타오르는 밤이 오고 삶이란 무지막지 낡은 한 잎의 벽화였다 화엄장엄의 사월, 지상의 계단마다 지하의 벼랑마다 고요히 등촉이 켜지는 축복의 계절, 누가 병속의 물을 쏟았을까 누가, 누가,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사이 낳지도 않은 아이 삼 년을 찾아 헤매는 석장승처럼 빈 수레만 돌고 도는 사이 해 지는 물가에 앉아 거북아 거북아 노래하는 사이……. 벽해상전의 수만 년 후쯤 옛날 옛날로 시작하는 꽃다운 동화 속에 감자를 캐고 콩을 심었으나 키가 자라지 않는 난쟁이처럼 여전히 낭자한 사월이었다



鵲巢感想文
    미생未生은 12간지에서 양띠 해에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미생은 생이 아닌 그러니까 미(未)자가 아직 오지 않은 무엇을 의미한다. 쪽빛 같은 시를 건져내지 못했거나 아니면 양 띠 해를 가진 자아를 그리는 시제라 할 수도 있겠다.

    때는 사월이고 태양은 에레보스의 작은 풀밭이다. 이 문장은 시를 묘사한다. 그러니까 태양은 시를 제유한 시어며 에레보스는 그리스 신화의 어둠의 신으로 어둠이나 암흑을 뜻한다. 시인을 치환한 은유다.

    나른한 풍우(風雨)를 저어 쌓아 올린 제단마다 허방이었다는 말은 바람과 비로 그러니까 꿈과 난관을 이겨내며 쌓은 성과가 모두 구덩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백발의 북두성과 붉은 입술 풍뎅이마저 소매를 당겨 얼굴을 가리던 어느 아침은 시인의 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어느 아침이다. 백발의 북두성은 백지 위 시라든가 글을 제유한 시구며 붉은 입술 풍뎅이는 열정 가득한 자아를 그린다. 풍뎅이는 속어로 쭉정이라는 뜻도 있다.

    다음 문장은 제법 좀 길다. 불각이라는 말은 깨닫지 못한 것을 말한다. 한자로 표기하면 불각(不覺)이다. 만만파파는 일파만파와는 좀 다른 여러 심적인 작용을 묘사한다.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는 피리가 있다만, 이를 줄여 만만파파라 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시 문장이라 마음을 담는 것이 좋겠다.

    숟가락을 빼앗긴 저녁의 꽃처럼은 물방울의 팔에 매달려, 저녁도 먹지 못하고 꽃 같은 시에 몰입한다는 말을 은유한다. 여기서도 엄마라는 시어가 나오지만,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경전 같은 시, 나의 시의 모태라 할 수 있겠다.

    시간의 녹슨 튀밥 냄비란 어떤 결실이 없는 자아를 빗대어 하는 말로 시간의 경과성까지 보탠 시구다. 녹이 슬었다는 것은 부드럽지 못한 것을 의미하며 냄비는 자아를 제유한 시어다. 불멸의 옥수수 한 알 삼키지 않았다는 것은 불멸의 이빨 하나 까지 못했다. 옥수수가 튀밥으로 변이한 것은 시다.

    다음 문장도 화려하다. 천진한 바다엔 출렁거리는 푸른 심장과 심장들의 타오르는 밤이 왔다는 뜻은 시인의 시에 대한 맹렬한 복종과 탐구를 뜻한다. 천진난만한 바다 같은 문장에 푸른 마음과 몰입하는 열정의 밤이다. 삶이란 무지막지한 낡은 한 잎의 벽화란 그만큼 보잘것없는 삶을 말한다.

    화엄장엄(華嚴莊嚴)은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닦아 덕과(德果)를 씩씩하고 장엄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 사월이다. ‘지상의 계단마다 지하의 벼랑마다 고요히 등촉이 켜지는 축복의 계절’이란 시 해체이자 시 완성의 단계를 묘사한다. 그만큼 공부의 성과다.

    누가 병속의 물을 쏟았을까, 묻는 말이 아니라 자아의 반문이다. 병은 시인을 제유한 시어다. 물은 시 결정체다. 누가, 누가,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사이 낳지도 않은 아이 삼 년을 찾아 헤매는 석장승처럼 빈 수레만 돌고 도는 사이 해 지는 물가에 앉아 거북아 거북아 노래하는 사이, 이 문장은 시인의 시에 대한 투쟁으로 신화적 내용을 끌어다 쓰는 인유 같은 문장이라 할 수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 밀어라는 시구는 김수로 왕의 구지가로 가락국 건국신화에 삽입한 주술적인 노래다.

    벽해상전碧海桑田이라는 말은 상전벽해와 같은 말로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이다, 세상일의 변천이 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수만 년 후쯤 옛날 옛날로 시작하는 꽃다운 동화 속에 감자를 캐고 콩을 심었으나 키가 자라지 않는 난쟁이처럼 여전히 낭자한 사월이었다, 시의 장엄한 결실을 은유한다.

    일단, 선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겠다. 어떤 시인은 절취선이라 했지만, 이생과 전생을 구분하는 현실과 꿈을 분간하는 시작법은 어느 시인이든 바라는 바이다. 문턱을 넘은 개미가 문턱을 넘는 개미를 보고 있다. 문턱을 넘은 개미는 더는 자라지 않는 난쟁이처럼 신화가 되었다.


    지금껏 시를 보았다. 우리말로 쓴 시 문장이지만,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에 씁쓸한 마음을 얹어 놓는다. 하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문장력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자신만의 예술적 기치를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도에 이르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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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권규미 경북 경주에서 출생 2013 월간 <유심>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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